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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외국인 지원정책에서 배울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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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두 딸과 함께 도쿄 신주쿠의 한 동네 공원을 찾았다.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역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온 백인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실례지만 지금 말씀하신 게 한국어인가요?” 3년 전 미국에서 왔다는 이 여성은 유창한 일본어로 새 이웃인 내게 재활용 쓰레기 분류 요령과 맛있는 빵집 등 생활정보를 알려줬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들이 일본 생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자 “자신감을 가져라. 아이들은 빨리 배운다”며 어깨를 툭툭 쳐준다. ‘나세바 나루(成せば成る,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속담까지 섞어가면서.

도쿄에서 겪은 가장 큰 문화충격은 이곳에 사는 외국인들의 빼어난 일본어 실력이었다. TV에선 더 이상 외국인들의 일본어 실력이 화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인들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영어 때문에 쩔쩔매지 않고 외국인들과 일본어로 이야기하게 됐다”고 신기해할 정도다. 영어 공용어 지정을 주장하는 아사히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주필은 “이런 외국인들 때문에 일본인들이 더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고 개탄하지만,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모습은 참 부럽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일본은 2년 전 국민 5명 중 1명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 국가가 됐다. 일본 정부 보고서는 2020년까지 총인구는 2.8%, 국내총생산(GDP)은 6.7%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는 계속 줄어 2050년엔 1억 명, 2100년에는 6000만 명이 된다고 한다. 게이단렌(經團連)은 2050년엔 근로자가 지금보다 2400만 명 이상 감소한 420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노동 공백을 메우려면 3200만 명을 해외에서 데려오거나 자손을 낳아야 한다는 게 유엔의 추산이다.

일본 정부는 1990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 노동력 수입에 나섰다. 2000년 71만 명이던 외국인 근로자는 올해 85만 명을 넘어섰고, 일본 거주 전체 외국인은 250만 명을 웃돈다. 문제는 동시에 외국인 범죄가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발생한 외국인 범죄는 총 3만5800여 건. 93년에 비해 70% 이상 늘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일본어 교육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90년대 말부터 외국인들을 위한 각종 일본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외국인 학생이 일본의 공립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을 오면 학교와 지자체는 일정 기간 통역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부 지자체는 일본어 교육뿐만 아니라 뒤처진 학습지도까지 돕는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의 등교 거부와 탈선 등 각종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1년 이상 장기 거주 외국인들에겐 행정서비스도 일본인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제공된다. 이들은 국민건강보험의 의무가입 대상이 된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신주쿠의 경우 중학생까지 의료비가 무료고 매월 5000~1만 엔(약 5만~10만원)의 육아보조금까지 지급한다. 아기를 낳으면 내외국인 구별 없이 35만 엔의 출산보조금이 나온다.

2004년을 기점으로 외국인 범죄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외국인 증가에 따른 범죄와 사회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지만 “우리 필요에 의해 빗장을 풀고 외국 근로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대세다. 지난 주말 아사히신문은 칼럼에서 외국 근로자를 이민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언젠가 일본을 떠날 외국인이 아닌 영구 거주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29, 한국은 1.08이었다. 세계 1위 저출산 국가인 한국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상황이 아니다.

박소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