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비록 "金容淳과 姜錫柱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쌀 수송선이 청진(淸津)항에서 좀 데데한 짓을 하길래 붙잡아 두었더니 남조선에서 팔팔 뛰는 모양입니다.부부장(副部長)동지를 보자고 한 것은 이 문제도 논의할겸 아울러 쌀과 경수로 문제에서 그들이 왜 우리에게 자꾸 호의를 베풀려고 하는지 그 진정한 의도를 검토하자는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남비서(對南비書)동지도 그들의 모호한 의도 때문에 머리가 헷갈리는가보군요.』 『「한국형」이니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니 「울진 3,4호기」니 하는 것들이 北-美 합의에서 하나도 명문화되지 않았는데 왜 남조선 친구들은 30억달러나 들여 자기들이 경수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야단입니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분석됩니다.우선 대남비서 동지가 쌀을 두고 갈파한 「빗자루論」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쌀은 北-日 국교수립 협상을 트는 대가로 일본에서 받으려 했는데 난데없이 남조선 친구들이 뛰어든 것 아닙니까.망둥이가 뛰니까 빗자루도 뛴다는 속담 그대로입니다.경수로 사업도 그래요.핵 개발을 미끼로 미제(美帝)의 주머니를 털려고 했는데 남조선 친구들이 뛰어들었습니다.앞으로 건설 과정에서 남조선의 역할을 계속 배제시킬 것이지만 그래도 부득부득 자기들이 건설하겠다고 하면 「낙동강 잉어가 뛰니까 사랑방 목침도 뛰느냐」고 물을 참입니다.』 『그들이 온갖 모멸을 감수하며 경수로 건설 의사를 굽히지 않는 것은 「목마론(木馬論)」을 신봉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물 간 이론입니다.그러나 경계는 합시다.경수로 부지(敷地)조사단 가운데 또4명이 끼는 모양인데 구두시험을 칩시다.「트로이의 목마」를 아느냐고 물어서 안다고 하면 엑스표를 치고,그것이 숙녀(淑女)가타고 간 목마와 같은 것이 냐고 되물으면 입북을 허가합시다.』『며칠전 통일부총리 나웅배(羅雄培)는 자신들의 우월한 경제력을바탕으로 우리와 접촉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이것을 「햇볕론」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폭풍이 불면 나그네는 옷을 단단히여미지만 햇볕이 내리쬐면 결국 벗는다는 얘기 지요.』 『우리 옷을 벗기는데 수백억,수천억 달러가 들어도요?』 『통일 비용은얼마라도 좋다는 것 아닙니까.』 『남쪽에서는 우리의 처변불경(處變不驚)능력을 경시하는 모양인데,꿈 깨라고 하시오.이른바 「구멍론」이라는 것도 우리 둘레에 쌓은 둑에 일단 구멍이 생기면걷잡을새 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황당한 생각 아닙니까.』 『혹시 「이간론(離間論)」을 들어보셨습니까.남측은 우리 경제발전을 적극 도움으로써 우리측 경제.기술 테크노크라트의 호감을 사고 이어 우리 내부에 남북 협조무드를 조성한다는 것이지요.』『착각은 자유,망상은 해수욕장이라는 서울 농담 그대로입니다.』『그런데 최근 「내수론(內修論)」이 등장했습니다.단국대 이사장김학준(金學俊)이 민영환(閔泳煥)의 옛 얘기를 빌려 주장한 것입니다.먼저 자기들 내부를 잘 다스려 선진국이 되고 이어 우리가 합류하기를 기다리자는 것입니다.흡수가 아니 라 합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이론입니다.그런 자들을 反통일분자로몰아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우리는 외교와 책략으로 먹고살아야 합니다.지금 김영남(金永南)외교부장 동지도 연만하고 하니 공화국 북반부 외교를 이끌고 나가는 그대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과 나 김용순 당 대남비서가 단결해야 합니다.』 〈수석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