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왕 떠난 권좌 ‘마오이스트’가 잡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7호 13면

네팔의회당(NC)을 이끄는 코이랄라 총리가 10일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350㎞ 떨어진 비랏나가르 투표소에서 한 표를 던지고 있다(왼쪽).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카트만두의 투표소를 참관하면서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이 만든 카터센터를 비롯해 유엔과 비정부기구(NGO)들은 1000여 명의 참관단을 파견했다. 카트만두 AP=연합뉴스

240년간 국왕의 통치를 받았던 네팔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히말라야 산맥의 중앙에 자리 잡은 네팔은 10일 제헌의회(CA)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를 끝냈다. 2만여 곳의 투표소 중 20여 곳에서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발생했지만 1760만 명의 유권자들은 60%대의 투표율을 보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산악지대의 유권자들은 사나흘씩 걸어와 한 표를 던졌다. 개표 결과는 이르면 4월 말께 나온다.

네팔, 240년간의 왕정 끝내는 총선거 실시

네팔의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1948년 실시한 5·10 선거와 비견할 만하다. 당시 제헌국회에선 국호·대통령중심제·단원제 등을 결정해 건국의 주춧돌을 깔았다. 초대 의장을 맡은 이승만 박사는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네팔은 왕실·특권층의 부패와 내전 때문에 폭력과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2년 즉위한 갸넨드라 국왕의 절대권력 추구에 맞서 격렬한 시위와 유혈 사태를 겪은 끝에 민주화의 문턱에 들어섰다. 네팔인들은 강한 체력과 용맹, 근면함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이 고용하는 셰르파, 외인부대로 용맹을 떨친 구르카 용병이 그런 사례다. 동남아 한인식당에서 일하는 네팔인들은 ‘가장 성실하고 가장 한국어를 빨리 배우는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난한 조국을 떠나 중동·동남아에서 일하는 사람만 100만 명을 웃돈다. 가진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네팔이 과연 새 역사를 펼쳐나갈 수 있을까.

네팔의 국교인 힌두교의 신(神)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런 의식 세계를 반영했는지 제헌의회 선거에선 70여 개의 정당이 난립했다. 선거 출마자도 성·지역·계층·이념을 망라해 지역구에 4000명, 비례대표에 5700명이 출마했다. 제헌의회 의원 숫자가 575명(지역구 240명, 비례대표 335명)임을 감안하면 20대1에 가까운 경쟁률이다. 여기에 총리가 소외계층에서 26명을 지명해 제헌의회는 총 601명으로 구성된다.

네팔의 언론과 정치 전문가들은 임시정부 수반인 G P 코이랄라 총리가 이끄는 네팔의회당(NC)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중도우파 성향의 네팔의회당은 가장 최근 실시된 1999년 총선 당시 37.2%의 득표율을 올려 111석(전체 의석 205석)을 차지했다. 당시 중도좌파인 마르크스·레닌주의자연합(UML)이 제2당(71석), 왕당파 정당인 RPP(타파)가 제3당(11석)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급진좌파인 마오이스트당(黨)이 다크호스로 떠오른다. 전문가들은 “네팔의회당과 마오이스트당이 제1당 자리를 다툴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일 개표 초반 마오이스트당은 지역구 102곳 중 56곳에서 앞서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선거 결과가 나와도 정국은 여전히 혼미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승리한 제1당이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정당세력이 폭력 투쟁으로 돌아서면 언제든지 내전에 휩싸일 수 있다. 특히 마오 반군을 기반으로 한 마오이스트당의 승복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다. 국제위기그룹(ICG)은 최근 보고서에서 “각 정당은 경쟁 상대를 선거부정과 폭력의 주범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힘 있는 패배자의 행위는 즉각적인 여파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오이스트당은 이번에 600여 명의 후보를 냈다. 2006년 임시의회(총 330석)와 임시정부(각료 22명)의 지분을 인정받는 대신 무장을 해제하고 기존 정당의 민주화 작업에 협력해 왔다. 당 지도자인 프라찬다(본명은 푸슈파 카말 다할)는 “선거에서 지더라도 인민의 역사적인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부 간부들은 사석에서 “꽃다발이 아니라면 총알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3만여 명의 마오 반군은 평화협정 체결 뒤 무기를 반납하고 유엔이 감독하는 30여 개 병영에 분산 수용돼 있다.

대통령중심제가 채택될 것에 대비한 대권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마오이스트당은 선거 유세장마다 ‘프라찬다를 초대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프라찬다는 농지개혁, 봉건제 타파, 경제재건을 약속하며 대선 후보를 방불케 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에 질세라 마드하브 쿠마르 네팔 UML 서기장은 “내 나이 53세밖에 되지 않아 얼마든지 행정부 수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개표 결과 지역구에서 마오이스트당 후보에게 적은 표 차이로 낙선해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총리 직을 다섯 번째 맡은 코이랄라 총리는 뛰어난 조정력과 대중적인 신뢰를 자랑한다. 네팔의회당은 대통령제보다 내각제를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선거 이후 정국을 위협할 또 다른 변수는 갸넨드라 국왕을 지지하는 기득권 세력과 자치권을 주장하는 테라이 지역이다. AFP통신은 10일 “갸넨드라가 선거 기간 중 공식 활동을 일절 중단한 채 사태 추이를 관망했다”며 “선거 이후 정국에 개입할 방안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갸넨드라는 군부와 왕당파 정당, 힌두교 원리주의 세력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마오이스트당은 왕정 폐지 뒤 갸넨드라는 ‘평민’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공언한다. 이웃 나라 부탄이 해외유학을 한 젊은 국왕(28세)의 결단으로 지난달 총선을 실시해 입헌군주제를 실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인도와 인접한 테라이 지역은 중앙집권주의에 익숙한 네팔 정치권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인구와 경제력이 다른 지역보다 우세한 테라이 지역은 마드헤시족을 중심으로 자치권과 중앙정치의 지분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여왔다. 이 때문에 제헌의회 선거가 두 차례나 연기되는 사태까지 겪었다. 네팔의 민주화는 히말라야 산맥의 고산준봉만큼이나 험난하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