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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아리영 머리에 꽃을 꽂아준 또 하나의 남자가 있었다.미스터 조였다. 인도는 축제의 나라다.햅쌀로 요리를 하는 1월의 수확제(收穫祭)를 비롯하여 1년 내내 축제 없는 달이 없다.
디왈리는 특히 화려하게 치러지는 빛의 축제다.인도력(曆)으로는 여덟번째 달의 첫날,양력으로는 대체로 10월 하순께에 해당된다.뉴델리의 밤도 환상의 빛으로 넘친다.우유기름을 담은 수많은 진흙 종지에 밤새 불을 밝혀 번영의 여신 락시 미에게 기도드리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지 사람들과의 모임에 나가 아리영은 혼자베란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아라비안 나이트』였다.학교 과제로 논문을 써내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 도움이들도 모두 축제에 나가 인도인 수위 아저씨 하나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진흙의 오일 램프는 베란다 난간에도 가지런하여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세계같이 신비로웠다.
갑자기 인기척이 나 얼굴을 들고 놀랐다.미스터 조가 아닌가.
『아버지는 안계시는데요.』 아리영의 말에 미스터 조는 고개 저으며 웃었다.
『아리영씨를 훔치러 왔어요.』 『네?』 디왈리 날 밤이면 집집마다 문을 조금 열어 두는 것이 관례다.번영의 여신 락시미가집안에 들어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인도인 수위 아저씨도 관습에 따라 대문을 조금 열어놓았던 것일까. 그 틈새로 미스터 조는 몰래 들어온 모양이다.
그는 선물 꾸러미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하늘색 사리였다.실크천에 누벼진 금빛 수가 디왈리 축제의 꽃불처럼 눈부셨다.
『정말 제게 주시는 거예요?』 의자에서 일어나 사리를 어깨에두르는 아리영을 미스터 조는 힘껏 안고 키스했다.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리영은 그의 팔 안에서 후들후들 떨었다.
미스터 조는 아리영을 껴안은 채 잔디밭을 가로질러 브갬베리아꽃나무 울타리 안에 세워진 정자로 갔다.
정자에는 평상이 놓여 있었다.
미스터 조는 꽃송이 하나를 따 아리영 머리에 꽂은 다음 긴 머리카락과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기 윗옷을 벗어 평상에 깔고 아리영을 천천히 그 위에 누였다.그리고 스커트의 지퍼를 내렸다.
아리영은 저항하지 않았다.온몸이 마구 떨려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를 사랑했다.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리라 싶었다.그러나 무서웠다.
미스터 조는 그런 아리영을 서둘러 가졌다.벽이 뚫리는 아픔으로 아리영은 소스라쳤다.브갬베리아 꽃이 평상 위에 떨어졌다.얇은 막(膜)과 같은 연분홍 꽃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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