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起源"저자 리처드 리키 야생동물보호위해 창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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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기원』(원제:Origins)『인류의 기원』(원제:HumanOrigins)등의 고고학 명저들을 냈던 영국계 케냐 고고학자이자 저술가인 리처드 리키(51)의 최근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케냐에서 태어나 케냐시민으로 생활하면서 고생물학 연구와야생동물보호운동에만 매진해왔던 그가 지난 5월 갑작스럽게 정치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리키에게 고고학은 천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리키는 인류의기원을 찾아 평생을 보낸 고생물학계의 대부인 부친 루이스 리키와 동료인 어머니 멜리 리키 사이에서 태어났다.발굴현장인 나이로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리키는 어릴때부터 현장에서 고고학을 배웠다.역시 고고학자가 된 그의 동생 필립 리키와 함께.
이같은 성장배경 덕분에 리키는 이론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로저 레윈과 공동으로 저술한 명저 『기원』은 리키의 성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작.
이 책에서 리키는 인류는 초기부터 협동적이며 질서에 순응하면서 진화해온 동물로 인간이 대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면 자멸을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물의 화석밖에 모르던 리키가 정치를 생각하게 된 것은 93년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 난 다음부터다.리키는 81년부터 케냐무아(Moi)대통령의 요청으로 야생동물성(野生動物省)의 책임자가 되면서 파격적인 조치들로 주목을 끌었다.
세계은행에서 1억5천만달러의 돈을 끌어들여 밀렵꾼을 체포하기위한 단속반을 중화기로 무장시키는가 하면 3백만파운드 상당의 상아를 공개적으로 불태우기도 했다.리키의 잇따른 강경조치들은 주변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리키가 세스나기로 사파리를 순찰하다 추락사고를 당하고난 다음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리키는 이 사고로 무릎 아래의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영국 노팅엄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케냐로 돌아왔을 때 리키를 기다리는 것은 사임 압력이었다.야생동물성을 맡아 달라고요청했던 무아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리키의 강경한 야생동물 보호조치들이 케냐 관료들의 기득권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국 BBC다큐멘터리 『야생동물의대부』(원제:Africa's Wildlife Warrior)방영을 앞두고 영국을 방문한 리키는 『케냐의 야생동물을 제대로 보호하려면 정부조직의 부패구조가 먼저 척결돼야 한다』며 『애초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은 전혀 없었지만 동물보호를 위해 정당을만들었다』고 말했다.
리키가 만든 사피나(Safina)黨은 배(船)라는 뜻으로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홍수를 피해 새로운 생활을 찾아 나섰던 노아의 방주를 상징한다.
정당결성 이후 주변사람들이 『의족을 달고 어떻게 힘든 일을 하겠느냐』며 우려의 뜻을 비추면 리키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의족은 키를 마음대로 키울 수 있는 장점도 있다.인생의 중요한 모든 일은 무릎 위에서 일어난다.』 〈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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