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4년 후 오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어제 국회위원 선거가 있었다. 10년 만에 집권한 한나라당은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한 안정 의석 확보를, 야당은 그들의 이념적 지향의 차이와 무관하게 이구동성으로 한나라당의 독주 견제를 내세웠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파랑·초록·노랑 등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고 전철역 입구에서, 시장통 입구에서, 등산로 입구에서 ‘기호 X번입니다’를 외치던 사람도, 구경꾼들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세상 풍파에 시달려 온 냉소적인 유권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내다본다.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비굴하리만큼 표를 구걸하던 태도를 싹 바꾸어 자신의 특권에 걸맞게 대접받기를 원할 것이고, 자신들의 세비 인상에는 당적의 차이를 뛰어넘어 단결할 것이며, 자신의 직업적 이해가 걸린 사안에는 여야 가리지 않고 시대의 소망에 역행하는 결정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주의자들은 짐작한다. 4년 후가 되면 어김없이 물갈이를 앞세운 개혁공천 드라마가 재방송되리라고 그들은 확신한다.

나는 이런 냉소적 예측이 틀리기를 소망한다. 현실의 벽에 절망하고 있기에는 한국이 처한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경제회생이 지금 가장 시급한 일임을 명백하게 확인해 주었다. 지금의 대내외 경제 여건은 경제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를 내세운 정부에는 거센 풍랑과도 같다.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나라에서 유가는 100달러를 훌쩍 넘어버렸고 식료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물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파장은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상실시켜 세계 자본시장은 극심한 혼동에 빠져있다. 경제회복이 더디고 물가가 날뛸수록 서민층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물가도 안정시키고 투자도 촉진시켜 부진의 늪에서 탈출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갈 길은 잘 보이지 않는데 마음은 급하다. 급할 때일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글로벌 경제의 논리를 거스르는 경제정책은 역효과만 낸다. 개방경제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근본적 정책처방은 소비자들이 느낄 만큼 물가가 인하되도록 개방과 국내 경쟁, 규제개혁을 연계하는 것이다. 시장개방이 확대되어도 소비자물가 인하효과가 미미하다면 국내 유통 구조가 비효율적이거나 경쟁사들이 담합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컨수머 프렌들리(consumer friendlly)’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만으로는 너무나 뻔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기업 간의 경쟁을 촉진시키지 못한 채 규제완화만 이루어진다면 기득권을 가진 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갈 우려가 높다. 이러한 상황은 현 정부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집단들에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친재벌 정권이라는 정치공세의 빌미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다. 과거 보수 집권세력이 저질렀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4년 후 정권 재창출에도, 국익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난 기업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세탁물 목록처럼 마구 쏟아내지만, 정작 거기에는 경쟁을 촉진해 달라는 이야기는 빠져있다. 지구상의 어느 멀쩡한 기업치고 경쟁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정신 나간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컨수머 프렌들리’ 정책을 고안하고 집행하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다. 국회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역구민들이 선량을 뽑아 국회로 내보냈던 것은 그들로 하여금 납세자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글로벌 시대에 선량들의 시야는 지역구를 뛰어넘어야 한다. 회의장 점거, 의사봉 감추기, 의장 출근 저지, 극한 대치는 그 자체가 그들을 선출해 준 유권자의 혈세를 낭비하는 몰지각한 행태다. 우리는 고성이 오가는 속에서도 치열한 논쟁과 창의적인 대안 모색에 몰두하는 선량들을 보고 싶다. 누가 더 ‘컨수머 프렌들리’한 대안을 내는지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다. 새로운 진용을 갖춘 여의도 정치가 국내 정치세력의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여전히 갇혀있다면, 4년 후에 또 다른 개혁공천이 난무한다 해도 희망의 불빛은 희미할 것이다. 총선 다음날 아침의 이런 생각이 기우이기를 입증할 책임이 새로 선출된 선량들에게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