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나쁜데 웬 ‘건설사 M&A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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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때아닌 건설사 인수합병(M&A) 붐이 일고 있다. 올 들어 벌써 진흥기업·남광토건·성지건설·온빛건설(옛 한보건설)·세양건설산업 등 1등급 (시공능력 평가액 170위 이내) 5개 건설사가 주인이 바뀌었다.

또 동양·오리온·동국제강·아주그룹 등이 인수할 건설사를 물색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민영 연구위원은 “인수자 측에선 건설경기가 침체돼 있는 지금이 오히려 헐값에 건설사를 사들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분양 증가로 건설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M&A 시장에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건설사를 사들이는 데 큰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중견 제조업체들이다. 과거에 단기차익을 노린 외국계 투자자본이나 몸집을 불리려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M&A에 나서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중견 그룹들은 대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건설사를 인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업 규모가 큰 건설업의 특성상 한두 건만 성공해도 주목할 만한 실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 김기덕 실장은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는 제조업체들이 기대수익이 상대적으로 큰 건설업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극동건설의 새 주인인 웅진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덩치가 큰 건설업이 필수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기존의 정수기·교육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극동건설 인수를 위해 무려 6600억원을 썼다.

새 정부 들어 한반도 대운하 등 굵직한 일감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건설사에 관심이 쏠리는 또 다른 이유다. 각종 규제로 전망이 불투명한 주택사업보다 토목사업 비중이 큰 건설사가 주된 M&A 목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옛 명지건설에 이어 최근 남광토건을 사들인 대한전선그룹과 올 초 진흥기업을 인수한 효성그룹이 대운하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한전선그룹 권기혁 상무는 “남광토건이 대운하 사업에 참여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상황에 따라 대운하 사업 참여 폭을 넓힐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영인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사를 사들이기도 한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대표는 올 초 세양건설산업을 인수하고, 이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를 기반으로 김 회장은 대북사업을 확대하고 두바이 등 중동지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현대그룹 출신 30여 명을 영입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도 성지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건설사 M&A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인수액에 비해 실속이 적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미분양이 쌓이면서 부실 위험과 우발 채무의 발생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신용평가정보 김가영 책임연구원은 “인수기업은 앞으로 2~3년간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사를 사들이는 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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