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비만제거 호르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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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빌렌도르프 비너스로 불리는 구석기시대의 여인 조상(彫像)은 터질 것 같은 배,엄청난 가슴과 둔부가 자못 인상적이다.늘 굶주림의 위협에 시달리던 시절 비만한 육체는 보다 높은 생존 가능성을 의미했다.2만4천년전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만든 예술가는극단적으로 비만한 여체(女體)를 통해 궁핍기를 견뎌낼 힘과 풍요의 축복을 기원했을 게다.
오랜 세월을 통해 인류는 장기간의 굶주림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다.그 결과 우리 몸은 과잉음식을 지방질로 바꿔 이를 보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획득했다.신진대사에 필요하지 않은 칼로리의 98%가 가슴과 배.엉덩이.넓적다리 같은 인체내의저장소에 체지방(體脂肪)형태로 보관된다.비만의 신호가 오는 바로 그 지점들이다.게다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양이 줄어들면 우리몸이 이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은 더욱 증대된다.우리의 위(胃)가 가진 놀라운 탄력성도 음식 물이 있을 때 이를 양껏 받아들임으로써 체내에 여분의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궁핍기를 넘기는데 있어 이런 능력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잉여에너지를 지방질로 저장하는 능력이「산업사회 이전 전체 기간중 배고픔에 대한 인류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생물학적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산업사회가 열리고 인류가 주기적인 굶주림이란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생물학적 유산은 비만이란 새로운 문제를야기시켰다.수백만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 대부분은 굶주림의 시대였다.먹을 것이 충분치 못해 살찔 틈도 없었던 만큼 자연선택이란 메커니즘은 심장과 동맥을 손상시킬 정도로 많이 먹는 사람들을 도태(淘汰)시켜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게 해리스의 주장이다.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비만 해결이 어려운 근본적 원인이 바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미국(美國)에서만 한해 3백30억달러(약25조원)라는 엄청난 돈이 살빼기를 위한 온갖 요법에 쓰이고 있지만 신통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소가 체내의 지방을 연소시키는 렙틴이란 호르몬을 발견,쥐에 대한 실험을 통해 그 효과를 확인했다 해서주목을 끌고 있다.인체에 대한 효과는 미지수지만 많은 사람들이심적.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는 비만 해결에 결 정적 실마리가 될 가능성도 엿보여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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