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자산운용업법 시행으로 펀드시장 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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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돈을 금융회사들에 맡겨 간접적으로 굴리는 자산운용(펀드)시장의 투자 지평이 확 넓어진다. 그동안 펀드(수익증권)라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부동산.금.원유.영화.환율.금리 등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 투자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펀드들이 나올 전망이다.

금융회사들 간의 이해 상충으로 산고(産苦)를 겪었던 '간접투자 자산운용업법(이하 자산운용업법) 시행령'이 16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22~23일께 공표와 동시에 발효되기 때문이다.

재산 불리기에 갈등했던 투자자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은행.증권.투신 등 금융회사들은 법 시행 초기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벌써부터 치열한 각축전에 돌입했다.


◆뭐가 달라지나=자산운용업법은 지금까지 은행.투신.보험 등 금융권역별로 시행되던 각종 투자관련 규제를 자산운용이란 하나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통합했다.

이에 따라 증권투자신탁업법의 수익증권, 증권투자회사법의 회사형펀드(뮤추얼펀드), 신탁업법의 은행 불특정금전신탁, 보험업법의 변액보험이 모두 이 법을 따르게 된다. 사실상 이들 상품은 성격이 엇비슷한 데도 규제하는 법이 달라 투자자들의 혼선을 불러왔다. 상품에 따라 형평성 시비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법이 합쳐지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다양한 간접투자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투자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특히 투신사들이 토지나 건물.아파트 등 부동산에 투자하는 상품(신탁형 리츠)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구조조정(CR) 부동산투자회사(REITs.리츠)가 있지만 이를 설립하려면 최소 자본금이 500억원은 돼야 하는 등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러나 새 법이 시행되면 10억원 정도의 자금만으로도 펀드형식의 리츠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또 금.원유.곡물 등 실물자산을 이용한 펀드도 나오게 된다.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영화펀드도 나올 수 있다. 그동안 영화 '바람난 가족' 등은 투자자들에게서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든 뒤 수익금의 일부를 나눠주기도 했지만, 이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사설펀드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은행이나 증권사에 주식형 펀드를 사듯이 영화펀드를 살 수 있다.

사모펀드와 관련된 규제도 바뀐다. 현재 사모펀드는 50명 미만의 투자자만 모집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30명 미만으로 투자자 제한이 강화된다. 다만 100억원 이상의 투자자나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100명 미만까지 모집할 수 있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을 사고파는 사모주식펀드(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시장 선점 경쟁=1999년 대우채 문제가 불거지기 전 260조원에 달했던 투신사 수탁액은 지난해 카드채 위기 등을 겪으며 12일 현재 155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자산운용업법이 시행돼 상품이 다양해지면 내년 중반 200조원대까지 시장이 다시 불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투자증권 홍성룡 상품기획팀장은 "투자대상이 다양해지는 것은 금융회사나 투자자 모두에게 큰 기회"라며 "새로운 상품들이 얼마나 좋은 투자 성과를 낼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미 투신사들은 사전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미래에셋투신이 신탁형리츠 개발을 위해 부동산 전문가 5명을 확보했으며, 삼성투신은 내부 전문가를 발탁해 키우고 있다.

슈로더투신운용의 경우 최근 해외펀드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 착안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해외펀드를 들여와 펀드투자펀드(펀드 오브 펀드)화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자산운용협회 김철배 기획팀장은 "자산운용시장의 특성상 초기에 시장을 얼마나 장악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경영난에 처한 투신사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양한 자산을 기초로 한 펀드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자산운용협회 양성욱 상품팀장은 "펀드는 기준가격을 정한 뒤 수익률을 어떻게 환산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영화나 금.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기준가격 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방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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