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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性희롱 재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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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테레사 해리스라는 미국의 한 중년여성은 내슈빌의 어느 트럭임대회사에서 간부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93년 가을 그녀는 찰스 하디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2년이 넘도록 사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왔다는 것이다.그녀가 주장한 성희 롱의 사례들은 다음과 같았다.
사장은 틈날 때마다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퍼부었으며『호텔에 가서 봉급인상 문제를 의논하자』고 제의하는가 하면『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꺼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하급심은 사장의 행동이 「불쾌감을 주고 무분별한 짓」이기는 하지만 성희롱은 아니라는 뜻밖의 판결을 내렸다.이유는 원고가 피고의 언행으로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당 연히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모든 사람이 귀추를 주목한 까닭은 대법원이 86년 「성희롱은64년의 민권법에 의해 금지된 일종의 性차별」이라고 만장일치 판결을 내린 후 대법원까지 올라간 최초의 성희롱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심리를 마친지 27일만에 해리스에게 승리를 안겨주면서 이른바「성희롱의 개념」을 만장일치로 확정했다.그때 일부 언론으로부터「성희롱 사건의 기념비적 판결」이라는 찬사를 받았던「성희롱의 개념」은 이렇다.『「상식적인 사람」으로 하여금직장 분위기를「적대적이고 모욕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과 개념 정립으로 해리스는 하급심이 지적한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증할 필요는 없게 됐지만 문제가 여기서끝난 것은 아니다.해리스는 그녀 자신이 당했던 사례들이 대법원이 정의한 성희롱과 같은 것임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희롱 관련 사건들은 이처럼 미묘하고 복잡하다.「기념비적」이란 찬사를 들었다고는 하지만 美연방대법원의「개념」또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끼지는 않을 터인즉 「모범답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서울大 성희롱 사건」의 항소심 판결도 마찬 가지다.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있기까지는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것은 1심의 유죄판결이나 항소심의 무죄판결이나 성희롱에 대한 남성 혹은 여성의 입장을 뭉뚱그려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오히려 이런 문제를 심리해 유.무죄를 가름해 야 하는 법관들의 처지가 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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