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국민불편 더는 개혁 보완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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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묘하게도 이승윤(李承潤)민자당정책위의장은 개혁정책과 인연이 깊은 인물인 것 같다.학자에서 관료로 대변신,6共의 경제부총리로 등장한 조순(趙淳)경제팀이 경기침체기에 금융실명제를 적극 추진하려 하자 나라경제 전체가 큰 소용돌이를 쳤다 .결국 정치권과 재계등의 거센 저항을 견뎌내지 못하고 조순호(號)는 닻을내리고 말았다.당시 「경제난국」으로 까지 몰리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승윤부총리가 이끄는 새 경제팀이 등장했다.
그가 취임 한달 후께 내놓은 종합경제대책의 핵심은 「실명제실시의 무기한 유보」였다.투자촉진 등을 골자로 한 경제활성화 쪽에 정책의 역점을 두었다.그러나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등장했던 그도 1년만에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정책의 혼선만 거듭했다고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4년동안 흑자를 유지했던 국제수지가 큰폭의 적자로 돌아섰고,물가가 근 10%대로 폭등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엔 黨정책위의장으로서 6.27선거의 참패가 중산층의이반(離反)때문이라는 분석에 따라 금융.부동산실명제의 수정 제의에 앞장서게 됐다.물론 민자당은 개혁정책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민의(民意)를 되돌리는 정책을 내놓자는 것 이라며 정부를설득하고 있다.본의든 아니든 李의장은 또 다시 개혁정책에 제동(?)을 거는 役을 하게 된 셈이다.
당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홍재형(洪在馨)경제팀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개혁의 후퇴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는 논리다.그러나 결국 대통령이 당의 건의를 받아들여 민생에 불편을 주는 부문이 있으면 보완하라는 지시로 개혁정책에는 어떤 형태로든 손질이 가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선 정부와 당간의 이견이 적지 않은 것 같다.정부의입장은 골격은 그대로 가되 극히 일부만 손댄다는 방침이고,당은세금.금융문제등 그동안 민원이 돼 왔던 분야 전반에 걸쳐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특명(特命)에 의해 전격적으로 도입된 금융.부동산실명제에 대해 감히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다 6.27선거 참패를 계기로 보완제의가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된다.
당이 요구하는 종합토지세 과표 현실화의 속도조절,소액송금에 대한 주민등록증 확인절차 폐지등은 상당한 개선의 근거가 있다고본다. 문제는 지금까지 당이 보여온 여러 행태 때문에 개혁수정제의에 의아해 하는 분위기가 꽤 있다는 점이다.6.27선거 참패후 정국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 비전이 제시되지 않은데다 말썽많은 주세법(酒稅法)을 여론수렴도 거치지 않고 전격 처리하는등 상식밖의 처사를 한 때문이다.
개혁정책의 보완작업도 당의 경제담당 정책조정위를 중심으로 5~6명의 경제통 의원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것으로 돼 있다.그러나 이들 의원중 이강두(李康斗)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자산가들이어서 자칫하다간 오해받을 소지도 있다.처음 당에 서는 분리과세 적용대상 금액을 현행 4천만원에서 그 이상으로 상향조정해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그런 식으로 논의가 진행돼서는 중산층을 빌미로 진짜 자산가를 위한 보완작업이 아니냐는 비난을 사지 않을까 걱정이다.조세(租稅)연구원 이 최근 조사한 바로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약 7만8천명으로 전국민의 0.8%에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개혁정책의 도입은 그에 따른 숱한 부작용과 문제점을 미리 철저히 검증하고 현실을 감안했어야 했다.국민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고위층 말에만 맞추어 정책을 입안하다보니 자연히 많은무리수가 따랐다.개혁추진과 함께 정부는 국민이나 기업에 불편을주는 규제를 많이 풀었다고 해놓고 사후 검증을 제대로 안해 더큰 민원(民怨)을 산 경우도 많다.그러니 규제완화는 말로만 그럴싸하고 관청에 가보면 변한게 없다고 한다.
무리한 점이 많은 개혁정책은 손질이 불가피하다.그러나 그 작업은 내년 선거에의 승리등 집권을 위해 추진하기 보다는 진짜 국민의 불편을 덜어주고 나라경제를 깨끗하고 튼튼하게 하는 각도에서 이뤄져야 한다.
후한(後漢)말의 경세가(經世家)인 순열(筍悅)은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위정자는 잔재주정치를 하지말고 사(私)를 없애고 무책임한 행동을 삼가라고 했다.우리 위정자들이 깊이 새겨둘 말인듯 싶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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