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변호사·작가 지망생 철학 수업 들으려 줄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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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의 철학 교육이 변하고 있다. ‘탁상공론(armchair) 철학 교육’ 비중을 줄이면서 글쓰기와 토론, 비판적 사고를 길러 주는 교육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배고픈 전공‘ ‘부잣집 도련님의 전공’으로 불려 왔던 철학이 인기를 끌면서 공부하려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럿거스대는 철학 과정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학은 과거 10여 년 동안 커리큘럼을 대폭 수술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전통적인 고전 서양 철학 비중을 줄이고, 인지과학·심리학·경제학·생물학·언어학 등의 다른 영역과 접맥시켜 철학의 역할을 생각하는 과목을 크게 늘렸다. ‘영화로 본 현대 철학’ ‘환경 윤리학’ ‘전쟁과 분쟁 윤리학’ 등과 같이 실생활과 밀접한 강의도 개설했다. 또한 글쓰기와 사고력 교육도 강화했다.

그러자 철학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4학년생 디디 원제메(22)는 의대 2학년 때 철학과로 전과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법대 대학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전과했다”고 말했다. 이런 학생이 많아져 이 학교 철학과의 4학년 학생은 2002년의 50명에서 올해는 100명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오히려 4%나 줄었다.

학교의 철학 정규 수업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수요 철학 클럽’도 성황이다. 지난 3일엔 10여 명의 학생들이 영화 ‘매트릭스’에 숨은 형이상학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대학의 베리 로워 학과장은 “철학 교육 내용이 바뀌면서 의사·변호사·작가·투자은행가 등 다양한 직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학생들이 기초교육으로서 철학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논리와 글쓰기, 비판적 사고를 일대일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치면서 철학을 전공한 학생들의 법과대 입학시험(LSAT) 평균 성적이 다른 전공자들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럿거스대뿐만이 아니다. 미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철학 과정 개설 대학은 10년 전 765곳에서 올해는 817곳으로 증가했다. 텍사스 A&M대, 노터데임대, 피츠버그대,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 등의 철학 전공자도 1990년대에 비해 2배로 늘었다.

데이빗 슈레이더 미국 철학학회 회장은 “갑작스러운 직장·직종 변경이 많은 현대에는 단편적인 실용지식보다는 글쓰기, 분석이나 해석, 비판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다”며 “철학이 이런 능력을 키워 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 대학에서 철학 과정 등록 희망 학생이 교과과정 허용 인원보다 많아 적지 않은 학생이 수강신청 때 거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철학 전공자를 외면했던 기업들의 태도 역시 달라지고 있다고 포브스지가 최근 보도했다. 구직사이트 몬스터트랙을 운영하는 마크 차녹 대표는 “기업이 요새 찾는 인물은 ‘변화의 주체’”라며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주어진 상황 밖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말했다. 철학 전공자가 이런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을 전공한 오버스톡닷컴 최고경영자(CEO) 패트릭 번은 “철학은 두뇌의 근육을 키워 주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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