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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처드홀브룩칼럼

미 역사상 가장 긴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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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탈레반의 근거지였던 아프가니스탄 동남부 코스트 지역이 이제는 미국의 성공 스토리가 됐다. 파키스탄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코스트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머물며 9·11 테러를 준비했을 정도로 탈레반의 핵심 활동 지역이었다. 여기서 탈레반은 축출됐다. 아프간 정부는 과거 적대 지역이었던 이곳에도 힘을 뻗치고 있다. 수도 카불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는 코스트주(州) 대부분을 위험지역에서 제외했다.

코스트의 사례는 전술과 리더십의 조합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크고 고통스러운 진실도 담겨 있다. 아프간 내의 갈등으로 미국인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또 전쟁은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될 것이다. 이미 7년째로 접어든 이 전쟁은 결국 베트남전을 제치고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코스트의 성공은 현지 상황에 맞게 전술을 개발한 최고의 팀이 이뤄냈다. 암살 위기를 네 번이나 넘긴 용감하고 정직한 주지사 알살라 자말, 아프간 군과의 연합 정찰이라는 공세적 체제를 구축한 창조적인 미군 사령관 스콧 커스터, 부족 지도자·대학생·이슬람 율법학자뿐 아니라 심지어 탈레반 이탈자들과도 직접대화 창구를 만든 젊은 외교관 카엘 웨스턴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미 특수군의 두 차례 야간작전에서 수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희생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우려를 표명할 만큼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부족 원로들은 나에게 불편한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흰 수염의 부족장은 “내 형제도 밤에는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당신네 미국인들은 노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지사 자말도 “우리가 애쓰며 노력해 왔던 모든 것을 손상시켰다”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자말과 부족 원로들은 야간 작전에 현지 주둔 미군이 관여하지 않았고, 목표가 탈레반 핵심 그룹이었던 점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를 삭이며 자신들이 필요할 때까지 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미군의 주둔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토가 없었다면 아프간 정부는 몰락했을 것이다. 아프간 사람들의 정부군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다. 나토의 지원 없는 열악한 상황에선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게다가 아프간인들은 이곳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인 경찰을 경멸하고 있다. 나는 길거리에서 뻔뻔스럽게 돈을 강탈하고, 뇌물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농산물을 훼손하고, 마약 거래에도 관여하는 경찰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외교관·언론인·군인 등 80여 명의 외국인과 일반 아프간 사람들, 그리고 카르자이 정부의 고위 관료들과 나눈 대화에서 나는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한 가지를 찾아냈다. 사회 전반의 광범위한 부패와 마약 거래가 가장 심각한 문제며, 이것이 탈레반이 다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올해 말 도착하는 3000명의 미 해병대를 포함해 나토군이 추가로 배치되면 코스트에서 보듯 보다 많은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술적 성과는 아프간을 국제사회의 지원에 보다 더 의존적인 나라로 만들 것이다. 아프간에서의 분투는 미국의 국가 안전에 필수적이다. 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 동맹국이 깊숙이 관여할수록 다음과 같은 의문이 더 강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국제사회가 해온 역할과 책임을 아프간 정부에 되돌려 줄 것인가. 미국 역사상 가장 길게 끈 전쟁이 되면서 단기적 성공이 오히려 장기적 함정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리처드 홀브룩 아시아소사이어티 이사장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정리=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