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상업은행 개설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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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는 25일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2차 회의에서 2002년 7월 단행된 '사회주의경제관리 개선조치'(7.1조치)에 이은 후속 개혁조치들이 발표될 것이란 관측이 대두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2단계 경제개혁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은 지난해 말부터 국내외 대북 무역업자들 사이에서 계속 나돌았다.

통상적으로 매년 상반기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에선 예산안 통과가 주요 의제다. 이번 2차 회의도 지난 한 해 국가 예산 집행 상황을 결산하고 올해 예산안을 심의.의결하게 된다. 올해 예산안은 국방비와 첨단과학기술, 남북 경협에 따른 사회간접자본(SOC)의 투자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 개성공단 1단계 100만평 건설사업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올 상반기 안에 부지 조성을 완료키로 남북한이 5일 합의한 만큼 이에 대비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회의가 2차 6자회담이 끝난 직후에 열린다는 점에서 지난해 추진하다 무산된 금융 분야의 개혁조치가 발표될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관측이 있다.

중국의 한 대북 사업가는 15일 "북한 당국은 지난해 9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 개혁 입법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1차 6자회담에서 성과가 없자 유보했다"며 "지난달 2차 6자회담이 큰 무리 없이 진행돼 이번에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 금융 개혁은 개인.기업소를 상대로 한 대출 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업은행을 개설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7.1조치' 직후인 2002년 8월 북한 조선중앙은행 고위층 8명이 중국의 은행.금융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은행.공상은행 등 4대 국영은행에서 실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당국은 지난해 조선합영은행.신탁은행을 경영신용은행으로 합병하는 등 부실 은행을 정리하는 조치를 단행했었다. 경영신용은행은 자본금이 1200만유로(약 180억원)이며 외환 거래.대출 등 상업은행 기능을 일부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1963년 이래 단일화돼 있던 '재정.금융 시스템'이 분리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정영철 주임연구원은 "급격한 금융시스템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기업의 유동자금을 국가 지원금이 아닌 은행 대부에 의존하게 하는 변화는 40년 만에 재정과 금융을 분리하는 새로운 '신용계획화 체계'가 마련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경제특구인 함경북도 나선시에 개인 상점을 허용한 것처럼 국가의 소유권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에게 점유권과 경영권을 인정하는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을 발표하기에는 아직 북한 내외의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있다. 중국 중앙당학교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인플레를 우려해 금융 개혁을 아직 못하고 있지만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도입할 것이며, 이에 따른 인력 양성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대북 소식통도 "지난해 말부터 북한이 조만간 2단계 경제 개혁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계속 나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차 6자회담에 대한 북한 당국의 평가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창현.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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