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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豊 생환자들 어떻게 지내나-정신적 충격 악몽의 나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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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오늘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의 자원봉사자 활동이 눈부시다. 수많은 시민.병원.단체들이 나서서 밤을 새워 음식제공. 부상자 치료를 하고 일부 시민은 아직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구조를 돕고있다.
인근 반포4동 부녀회에서는 무려 2천명의 주부들이 나섰다.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주부단체들이 너무 많아 아예 차례를 정해 주었어요.』서초구청 부녀계장이 행복한 푸념를 할 정도다.
최근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같은 용감한 시민의식, 따뜻한 인정들을 보며 점차 우리 국민의 자원봉사가 생활화.정착화되어 감을 느낀다.이웃의 재난에 무관심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나서는 시민들,사회전체가 붕괴되는 절망감속에서도한가닥 희망의 등불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번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번 삼풍사고는 허술한 자원봉사자 관리체계를 확인하는 안쓰러움과 씁쓸함도 안겨 주었다. 엄청난 재난의 현장에서 아무런 지휘.관리체계가 없이 우왕좌왕했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사고가 난후 경찰이 통제선을 만들었으나 이미 그 안에는 1천명이상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
모두가 헬멧을 쓰고,모두가 조끼를 입고,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되는 상황에서 구조와 발굴이 진행됐다.
지난 4월 美 오클라호마 폭발사건때 美 정부당국이 취한 태도는 자원봉사자 관리면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당국은 즉시 주변 2개 블록을 통제한 뒤 주지사가 지휘하는 중앙대책본부를 중심으로 구조작업을 폈다.이에 투입된 요원은 모두가 소방대원등 공공구조대원이었고 적십자등 민간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은 통제선 밖에서 헌혈.음료 제공등「지원」자원봉사만 했다.구조대원으로 참가한 소수의 민간인들은 자격증이 있는 특정분야 전문가들로 당국의엄격한 심사를 거쳐 참가했다.
구조시작후 현장에서 제2폭발을 노리는 불발탄을 발견,수거한 것은 물론 공공 구조대원들이 한 일이다.
일본 고베 지진때는 오클라호마와 달리 재난초기 시민들의 구조활동이 컸다.다행히 지진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주위에 쓰러지고 피흘린 사람들을 들쳐업고 안전한곳으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공공 구조대가 편성되면서 모두 그 체계속에편입돼 지휘.명령에 따라 움직였다.구조의 경우는「공공활동」의 일부로,그외 음료.숙식제공등 봉사의 경우는 순수「민간봉사」로 그 업무와 역할을 분명히 나눠 일을 한 것이다.
삼풍백화점 사고의 경우 당초 4백명에 달하던 인명구조 자원봉사자들을 모두 빼 지금은 20여명 정도만이 구조를 돕고 있다 한다.시민들은 용감했지만 당국은 진작 이성적이어야 했다.이번 사고를 통해「공공」과「민간」활동의 개념구분이 정착 되어야 한다. 구조.발굴작업외에 장비제공,의료.음식물등「지원」 자원봉사의경우도 사고초기엔 여러 단체의 텐트가 뒤섞여 아주 혼잡한 모습이었다. 많은 자원봉사는 바람직하되 역시 정부의 사고현장 통제아래 이루어져야 했다.
사고후 TV등을 보고 찾아와 자원봉사를 자청한 시민들에게 어떻게,무슨 일을 맡겨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질서있는 안내도 없었다.평소 선진국의 「지역 자원봉사센터」와 같은 총괄적인 자원봉사 안내 사령탑이 있어야 함도 이 때문이다.
〈中央日報 자원봉사사무국 전문위원〉 『천운(天運)을 얻어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사회에 뭔가 기여하고 싶습니다.
』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51시간만에 구조돼 서울 강남병원에서 입원치료중인 환경미화원 24명은 「천운으로 새로 태어난 친우들」이란 친목회를 만들었다.
「천운으로…」은 하늘의 도움으로 인생을 두번 살게된 동료들이란 뜻으로 생존자가 정회원이다.또 남편과 아내를 준회원으로 받아들여 「삼풍이 만들어낸 인연」을 이어나갈 작정이다.회비를 모아 회원들의 경조사를 돕고 고아원.양로원 등 불우 이웃을 돕는활동을 할 계획이다.
회원 이계준(李啓俊.60)씨는 『죽음의 공포를 함께 극복해낸것을 기념하고 돈독한 우애를 다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4명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강남병원 330호실에 입원중인 한춘자(韓春子.45.여)씨는 『콘크리트천장이 「쿵」하면서무너지는 장면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라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고말했다.검은 옷을 걸친채 인적이 없는 산속을 헤매는 악몽을 꾼다는 것이다.
韓씨의 큰딸 조미영(趙美英.23)씨는 『자다말고 「살려달라」란 헛소리를 하는 등 불면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볼 때 무척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593호실에 입원중인 강기철(姜基喆.50)씨도 겉으로는 건강한 모습이지만 용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가 자신의 입원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정신장애를 겪고 있다.또 식사때를 빼고 이틀 계속 잠을 자는 등 몽유증세마저 보이고 있다.지하 1층에서 28시간만에 구조된 대원외국어고 교사 홍성태(洪性泰.40)씨 역시정신적 후유증이 심한 편이다.
洪씨는 붕괴순간 무거운 콘크리트더미에 깔리면서 다친 다리는 많이 좋아졌고 급성신부전증으로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던 것도 점차 호전돼가고 있다.그러나 洪씨는 매일 잠이들면 어김없이되살아나는 매몰당시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악몽에 식은 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하고 있다.부인 지미영(池美英)씨는 『잠자면서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사고당시 심신에 가해진 고통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며 『하루빨리 회복돼 다시 제자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몰 14시간만에 구조된 이행주(李幸柱.여)씨도 콘크리트더미에 깔려 마비된 오른발의 감각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등 육체적고통은 물론 칠흑같은 어둠속에 갇혀있는 악몽을 날마다 꾼다고 했다. 〈徐璋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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