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불리는 나토 … 신경 곤두선 러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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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2~4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 개막 하루 전인 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 미국의 입장에 반기를 들고 나왔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이날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나토 예비회원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유럽·러시아 간 세력 균형에 대한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달 31일 “그루지야는 정치적 불안,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에 대한 자국 내 여론 분열 때문에 나토 가입 전 단계 수순을 밟기에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독일정부는 이날 “나토 창설 60주년을 맞아 프랑스와 독일이 내년 정상회담을 공동개최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 확장이 핫이슈=이번 회담에는 부시 미 대통령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나토 회원국 정상 26명과 퇴임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다.

미국과 영국은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나토 가입 전 단계인 ‘멤버십 행동계획(MAP)’ 자격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들 나라의 나토 가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나토는 소련 붕괴 후 1999년 체코·폴란드·헝가리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진을 계속해 왔다. 2004년 루마니아·불가리아 등 동유럽 7개국이 가입해 회원국은 26개로 늘었다. 이번 회담에서는 알바니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 등 발칸 국가들이 정식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는 예비 회원국 자격을 얻고 싶어하지만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와 유럽 국가들의 분열로 그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과 유럽 재래식무기 감축협정(CFE), 코소보 독립 등도 논의될 예정이다. 대부분이 러시아의 이해와 직결되는 문제들인 만큼 러시아와 서방의 설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와 푸틴의 대결=야프 더호프 스헤퍼르 나토 사무총장은 28일 “부쿠레슈티 회담 분위기는 푸틴이 서방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그에게 공격적 발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푸틴은 러시아와 나토가 동반자 관계를 확립했던 2002년 로마 회담 이후 처음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한다. 대통령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국제회담이다. 푸틴은 5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차기 정권에서 총리직을 맡겠다고 공언해 왔다. 보리스 그리즐로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장은 1일 “의회가 5월 8일 푸틴의 총리 임명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내년 1월 퇴임한다. 그래서 일부에선 이번 회담 결과를 낙관하기도 한다. 임기 만료 전에 눈에 띄는 업적을 내놓기를 바라는 두 정상이 양국 갈등의 불씨가 돼 온 국제현안에 대해 뜻밖의 합의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두 정상이 이번 회담에 이어 6일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에서 별도의 회담을 하기로 한 것도 이런 기대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푸틴이 그루지야·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 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회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은 2월 “그루지야가 나토에 가입하면 양국 관계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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