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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직무정지 4일째] 高대행, 민감 사안 대통령과 상의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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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13일 정부중앙청사 접견실에서 톰 리지 미 국토안보부 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14일 폭설 피해를 본 충북 청원군 강내면 당곡리와 충남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를 찾았다. 高대행은 복구 현장에서 비닐하우스 파이프 철근 부족, 재해복구 단가의 현실화, 무허가 양계장 복구비 지원 여부 등 복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즉각 조치가 필요한 경우를 파악해 조속히 개선하라"고 관계당국에 지시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사흘째 행보다. 폭설 피해현장을 방문한 뒤 겨우 한숨을 돌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과도기를 관리할 큰 틀은 잡아놓은 것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조만간 高대행의 일정이 평소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는 국가관리에 대한 안정적 시스템이 구축돼 있고, 현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高대행은 하루 전까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일정을 소화했다. 13일 오전에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국가안보와 경제안정 등 국정수행에 어떠한 공백이나 흔들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탄핵 소추 가결에 따른 국민적 불안감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뜻이다. 高대행은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경제.외교.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잇따라 주재했다.

13일 오후에는 톰 리지 미 국토안보부장관을 접견했다. 당초 리지 장관은 盧대통령을 예방키로 돼 있었다. 대통령을 대신한 첫 외빈 접견인 셈이다. 이 자리에서 高대행은 "탄핵소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은 안정돼 있으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高대행은 외교.안보 분야 등의 중요한 국가 정책과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盧대통령의 조언을 구한 뒤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이는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과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며 법적 하자도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민주당 등 야당 측은 高대행이 국회 시정 연설을 해줄 것을 희망했다. 이번주 중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해 놓았다. 盧대통령을 탄핵해도 국정이 안정적으로 굴러간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高대행은 시정연설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야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특히 총리나 국무위원과 달리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는 국회가 출석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법률적 근거를 내세운 뒷면에는 정치적 고려가 깔려 있다. 대행은 노무현 정부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정을 임시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임시국회 소집 자체가 여야 정당 간 신경전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는 판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야당의 시정 연설 요청은 대행을 내세워 국정 안정을 위한 자신들의 노력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 3당이 열린우리당과 합의하면 시정연설을 고려하겠다고 총리실 관계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임시국회 소집을 반대하고 있어 성사 가능성은 없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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