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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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그림과 같은 한 쌍이었다.아버지도 멋있었지만 어머니는 더욱 돋보였다.
희고 갸름한 얼굴에 긴 눈매가 시원스러웠다.가운데 가르마로 머리를 빗어 나붓이 한복을 차려입고 나서면 흡사 이당(以堂) 미인도의 여인처럼 단아(端雅)했다.
영어에도 능통하여 품위와 기지(機智)가 넘치는 회화로 외국 신사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다.해외공관 파티에서의 어머니는 가위 여왕이었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어머니는 바지런한 일꾼이었다.늘 앞치마 차림으로 가사에 골몰했다.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상드리용」이라 불렀다.「신데렐라」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신데렐라」라고 하면 요즘 행운을 잡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되었지만 원래는 「재투성이」의 뜻이다.계모에게 혹사당한 신데렐라처럼 온종일 부엌에서 일하느라 「화덕의 재를 홈빡 뒤집어쓴 아이」를 의미한다.
어머니는 이 별명을 좋아했고,앞치마 입은 「재투성이」는 그 별명 때문에 더욱 매력있어 보였다.
앞치마를 빼고 어머니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 앞치마가 있었다.하얀 목면 앞치마,빨간 체크무늬 앞치마,커다란 해바라기 꽃모양을 오려 붙인 앞치마,블루 진 앞치마,곰의 푸 모습을 그려넣은 앞치마….갖가지 앞치마로 그날의 인상을 바꾸는 것이다.
슬기롭고 완벽주의의 아내였다.
남편이 아침에 입고 갈 양복과 와이셔츠,넥타이,양말,손수건을비롯하여 내의 일습을 전날 밤 고루 챙겨두기를 잊지 않았다.요리도 잘했다.가족의 식성과 계절의 식품에 따라 한주일의 식단을미리 짜서 냉장고 문에 붙여두었고,따끈해야 할 음식은 아주 따끈하게,차야 할 음식은 아주 차게 깔끔히 식탁에 올렸다.재만 뒤집어쓰지 않았지 온종일 일하는 재투성이였지만 공식 모임 날엔요술할머니 지팡이 덕에 변신하는 신데렐라처럼 화려했다.
북악산 골짜기에 작은 집을 짓게 되자 어머니가 당부한 것은 넓고 해 밝은 부엌과 마당에 자귀나무 심기 두가지였다.
『자귀는 정원수가 아닌데….』 의아해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설명했다.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나무지만 얼마나 꿈같은 꽃을 피우는지 몰라요.…그리고 자귀나무를 마당에 심으면 내외간의 의가 두터워진대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아버지는 선선히 응하며 어머니 뺨에 입을 맞췄다.아버지는 딸이 보는 앞에서도 아내에 대한 애정표현을 서슴없이 했다.아주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그런 사랑의 몸짓에 익숙해온 아리영에겐 남편은 「군자(君子)」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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