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목사의 꿈’ 오바마가 이뤄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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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걸 신조로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의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 받는 나라에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 마틴 루터 킹(1929~68·사진) 목사가 남긴 명연설이다. 그가 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에 모인 25만 군중에게 외친 이 감동적인 메시지는 전 세계를 전율시켰다. 4일(현지시간)로 킹 목사가 암살된 지 40주년을 맞는다. AFP통신은 31일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란 세 마디는 이후 흑백 차별 철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도했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목사로 일하던 그가 흑인 인권운동에 뛰어든 건 55년. 이 지역 흑인 여성이 버스 내 백인 전용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킹 목사는 일명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쳐 나갔다. 흑인들이 폭력 대신 버스 안 타기라는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도록 이끈 것이다. 그 결과 56년 미국 연방 최고재판소는 버스 내 인종 분리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킹 목사는 그 후 미 전국에서 인권운동을 주도하다 여러 차례 투옥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항의 행진·연좌시위 등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였다. 64년 공공장소에서의 인종차별적 대우 철폐와 흑백 간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통과된 데는 그의 영향이 컸다. 이런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다 68년 4월 4일 멤피스 시내 한 호텔 발코니에서 암살범이 쏜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인권운동의 순교자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킹 목사의 꿈’은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미 의회의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는 올해 대선에서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꿈에 도전한 이래 끊임없이 인종 논란에 휩싸여 있다. 최근 그의 종교적 스승인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가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을 놓고 ‘갓 댐 아메리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게 결정타가 됐다. 오바마는 그동안 ‘인종과 세대차를 초월하는 후보’로 자리 잡기 위해 인종 문제를 언급하길 꺼려 왔다. 그러나 라이트 발언의 파문이 커지자 급기야 정면 돌파에 나섰다. 그는 지난달 18일 필라델피아의 헌법기념관에서 “라이트 목사의 발언은 수세대에 걸쳐 미국 사회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인종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인종적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킹 목사의 63년 연설 이후 가장 진지하게 인종 문제를 천착한 연설로 평가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CBS의 여론조사 결과 69%의 미국인이 그의 연설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연설 한 번으로 백인 표 이탈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민주당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가 라이트 목사와 확실히 선을 그었어야 한다”며 백인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과연 오바마가 인종 차별 논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올해 대선을 통해 미국이 킹 목사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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