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청와대서 경영철학 특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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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 비서관들과 40명의 비서관 전원이 참석하는 확대비서관 회의를 주재했다. 1시간여 계속된 회의를 마친 뒤 이 대통령이 자리를 뜨자 곧바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혁신’이란 주제의 특별강연이 열렸다. 초청된 강사는 정태영(48·사진)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이었다. 엄숙한(?) 청와대 공식회의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경영학 강의가 열리는 이색적인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정 사장은 사장 취임 첫해인 2003년 9000억원의 적자에 허덕였던 회사를 지난해 7000억원 흑자로 돌려놓았다.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사위이기도 한 정 사장은 50분간의 강연에서 현대카드의 약진 속에 숨어 있는 혁신 노력과 경영 노하우를 소개했다.

다음은 정 사장의 강연 요지.

“1000원이 들어가든 1000억원이 들어가든 모든 프로젝트 결재는 9시간 이내에 처리되도록 시스템을 효율화했다. 회사 식당에 주방 시설을 갖춰 직원들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도록 했다. 직원들의 창의적 마인드를 높이고, 동료와의 팀워크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다. 사장 주재 회의엔 지정 좌석제가 없다. 오는 순서대로 앉아서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낸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카드 발급 고객들의 취향과 정보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감안해 세계적인 디자인 업체에 2억원을 주고 카드 디자인을 맡겼다. 그 전엔 비용이 불과 20만원이었다. 사무실 내부의 의자나 노트, 심지어 커피세트에서도 현대카드의 숨결이 피어나도록 기업이미지(CI) 통합 작업을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글로벌한 시각,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인드,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업무 프로세스가 인상적이었다”며 “비서관들 사이에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청와대’의 첫 외부 강연자로 대기업 CEO가 초청된 데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이 기업가적 마인드를 익힐 수 있도록 배움의 장을 만들어준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 대통령의 CEO 본능이 표출된 파격 행사”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정 사장을 연사로 초청하자는 아이디어는 이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김백준 총무비서관이 냈다고 한다. 이를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참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고 한다.

행사를 준비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근무가 한 달을 넘기면서 비서관들이 권태에 빠지고 외부와 단절되는 느낌을 갖게 된 게 사실”이라며 “현장감 있는 특강을 통해 청와대 비서관들이 ‘창조적이며 실용적인 변화’를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앞으로 ‘청와대 강연회’란 이름으로 한 달에 한 차례씩 국내외 명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들을 계획이다. 청와대 바깥세상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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