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쟁점과흐름>9.세계화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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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진 현상은 경제통합이다.국가를 경계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과거와 달리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은 유럽연합(EU).亞太경제협력체(APEC).북미자유무역협정(N AFTA),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가간의 통합.블록화를 가져왔다. 「세계화」로 요약할 수 있는 일련의 국제적 환경 변화로 국내외 학계에서는 90년대 들어 이와 관련된 이론적 문제들이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亞太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 참석한 93년 11월 이후 「세계화」는 중요한 정치적 담론으로 등장,그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세계화」와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는 「국민국가」의 존속여부,즉 「통일적인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와 파편화한 국민국가 사이의 이율배반」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국민국가」는 주권이 군주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의 이념이 보편화한 프랑스 혁명 이후 지금까지 경제발전 및 안보국가,복지국가 개념을 통해 그 영역을 확대해온 정치적 형태다. 세계화론자들은 자본과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정보통신의 발전에 따른 전세계적 통합의 가속화로 이러한 국가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나아가 국가들 사이의 정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증대하는 상태에서는 개인.기업. 국가에 부여해왔던 권리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시민적 권리,국가와 개인의 관계,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
「세계화」가 경제발전.안보.복지 등에 대한 국가의 자율성을 감소시키는 대신 EU와 같은 초국가기구가 등장하게 될 것으로 진단하는 사람은 대부분 관변 경제학자들.계간 『사상』 93년 겨울호에 기고한 사공일(司空壹)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의 글 「세계화 시대의 경쟁전략」이 그 대표적인 경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 대부분이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가열되고 있는 국제경쟁의 중요한 단위가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세계화」를 개별국가들 사이의 「무한경쟁」 시대로 인식하면서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파악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가 오히려 국가의 권한이나 역할을 증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주로 사회학자들에 의해 제시된다.
이런 주장에는 국가가 여전히 「시민권의 보장기관」이며 사회.
정치적 투쟁 및 대외적 관계를 매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기초를 이룬다.이 입장은 서울대 박명규(朴明圭.사회학)교수에 의해 보다 단순한 형태로 드러난다.
그는 『경제와 사회』 94년 여름호에서 『현재의 국제화가 결국 자본의 자국 이해의 극대화 논리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며 국민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金蒼浩〈本社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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