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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親盧 대 反盧 격돌…정국 '시계 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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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左)이 12일 탄핵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제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실제상황으로 다가왔다.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야당이나, 막지 못한 여당이나 모두 이 실제상황이 불러올 결과를 점치지 못하고 있다. 탄핵안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몫이 됐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만으로도 혼돈의 여파는 사회 구석구석으로 밀려들고 있다.

정국의 시계바늘은 1년3개월 전인 16대 대선 당시로 급격히 회귀하고 있다. 지난 9일 탄핵안 발의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친盧 대 반盧의 패갈림 현상은 12일 탄핵안 가결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탄핵안을 가결시킨 야권은 그 책임을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정치'로 돌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盧정권의 부패와 무능 속에 무너지는 나라를 바로잡으라는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이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탄핵안 가결 사태를 맞은 여권은 '의회 쿠데타'를 부각했다. 탄핵안 가결 직후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열린우리당은 "국민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탄핵당했다"고 말했다.

야권이 내건 '국민'과 여권이 내세운 '국민'은 단어는 같지만 대상은 다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패가름이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맞물려 우리 사회 전체를 준(準) 내전(內戰) 사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사모 등 친노 단체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으며, 보수단체들이 맞대응에 나서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혼돈의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세 다툼 결과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그늘이 만들어낼 혼란은 작지 않을 것 같다.

각 당이 탄핵안 가결 직후 "국정 안정"을 외치며 단기적인 애국심 경쟁에 나선 건 혼란의 역풍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헌정의 혼란 등을 이유로 총선 연기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법적으로만 보면 총선 연기는 선거법을 개정하면 된다. 하지만 야당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대세여서 탄핵 정국은 곧바로 총선 정국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탄핵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개헌론이 선거 이슈로 등장할지도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안 가결을 위해 개헌 카드로 자민련을 유인했다. 최병렬 대표는 지난 10일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면 국민의 뜻을 모아 다음 대통령 선거를 할지, 개헌을 할지가 자연스럽게 결정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안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의기투합한 야권 공조가 선거전으로 이어질지도 주목거리다. 야당 내부에선 盧대통령의 총선 올인에 맞서기 위해 이미 내밀한 논의를 해왔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겠다는 盧대통령의 입장 역시 정국 긴장도를 높이는 환경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의결은 정국에 짙은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박승희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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