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타타르人 폭동배경-경찰 청부살인 직접적 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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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흑해(黑海)북부 크림반도에서 최근 계속되고 있는 유혈 폭력사태는 지난 23일 반도 동쪽 페오도시야港에서 크림타타르人 2명이 괴한들에게 살해된 것을 계기로 촉발됐다.
크림반도 주인임을 주장하는 타타르인들은 자신들의 고토(故土)수복운동이 고조되자 당국이 갖은 수단을 동원,이를 탄압하고 있으며 이번 크림타타르인 피살사건도 단순살인을 가장한 관제살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페오도시야 경찰은 주로 시장.노변에서 행상.가판상에 종사하는크림타타르인들에게 무리한 자릿세등을 요구하며 괴롭히다 제대로 먹혀들지 않자 아예 불량배를 동원,청부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지배민족인 러시아인들에 대한 크림타타르인들의 사무친 원한 때문에 이같은 주장은 적어도 크림타타르인 사회에서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크림타타르인은 크림반도를 고향으로 하는 타타르인들을 일컫는 말로 13세기 몽고가 크림반도를 정복,킵차크汗의 지배하에 둘 때부터 생겨났다.이들은 15세기초 킵차크한國이 해체되자 크림한국을 세웠다가 보호국이던 터키가 1783년 러시아 와의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러시아 신민(臣民)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소비에트정권이 들어선 뒤인 1921년 10월크림자치공화국을 구성,1백50년만에 「準조국」을 되찾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44년 5월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오지로 추방됐다.크림자 치공화국은 그이듬해 6월 폐지됐다.당시 약 18만명의 크림타타르인들이 거의한명도 남김없이 추방됐으며,그 과정에서 절반이상이 살해되거나 병.굶주림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 57년 옛소련 당국이 소수민족들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정책들을 시인하고 복권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도 크림타타르문제만은 제외돼 크림타타르인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67년 9월에 형식상 복권된 이들은 8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물결을 타고 모스크바에서 원정시위를 벌이는등 본격적인 고향찾기 운동을 전개,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이 구성한 크림타타르인문제위원회로부터 87년■10월『정책 상 과오가 있었다』는「공식응답」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으나 귀향티켓을 얻어내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이들은 91년말 옛소련 붕괴를 전후한 혼란기를 틈타 대거 크림반도로 귀환,현재 25만명에 육박하고 있다.한편 지난 54년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를 할양받은 우크라이나는 크림타타르인들의 자치권확대를 약속하는등 이들을 지원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鄭泰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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