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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감자 한 개만 주세요” … 홀쭉한 비닐엔 ‘한숨’ 한 봉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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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서 반찬을 소량으로 구입하는 손님이 늘고 있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을 찾은 주부들이 반찬을 고르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20일 서울 방학동 도깨비시장. 한 채소 노점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콩나물 200원어치만 줘 봐요.”(손님)

“그렇게 팔면 뭐가 남아요?”(주인)

하지만 주인은 이내 콩나물 한 움큼을 봉지에 담아 건네고 200원을 받았다.

“워낙 장사가 안 돼서…. 달라는데 안 줄 수도 없고….”(주인)

월급 빼고는 다 오르는 물가고에 서민 경제에 주름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시내 재래시장 세 곳을 찾아 피부 물가를 체험해 봤다.

◇줄이고 또 줄여도…=기업들이 임금을 속속 동결하는 가운데 물가는 가파른 오름세다. 국제 유가는 고공행진에 원자재 값은 날뛴다. 국제 밀 값이 뛰어 라면·빵·자장면 값이 10% 이상 올랐다. 국제 콩 시세가 올라 두부·청국장·된장 값도 들썩인다. 유류비 인상으로 채소 값도 덩달아 올랐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 뜀박질로 가계부가 적자”라는 서민들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이날 도깨비시장에 장보러 나온 김은경(45·서울 상계동)씨는 감자와 당근 한 개씩을 각각 200, 300원에 샀다. “한 끼 먹을 카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만큼만 샀어요.”

이 시장에서 16년간 터를 잡아 온 윤종순(55)씨는 “지난해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올 들어 손님들이 통 지갑을 열지 않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채소를 낱개로 사 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튿날 서울 독산동 남문시장 안에 있는 생선가게. 한 중년 남성이 한 마리에 2500원·5000원·7500원 하는 갈치를 놓고 한참 망설이는 눈치였다. 결국 제일 싼 2500원짜리 냉동 갈치 한 마리에 손이 갔다. 갈치 값은 신선도와 크기에 따라 차이가 난다. 가게 주인 박여진(61)씨는 “고등어 한 손(두 마리)을 포개 진열해 놓은 것도 한 마리만 달라는 손님들이 있다”며 “경기가 썰렁하니 먹는 것까지 줄이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매출이 40만~50만원 됐는데 올 들어 2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고 한숨을 지었다.

적자를 이기지 못해 가게를 내놓은 경우도 많다.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에서는 한 구역 가게 20여 곳 중 6개가 한꺼번에 매물로 나왔지만 몇 달째 거래가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더 싼 곳을 찾아서=주부 이은성(38·서울 신림동)씨는 최근 쇼핑을 ‘이원화’했다. 대형 마트와 재래시장을 다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 “공산품 값은 마트가 싸고, 채소는 아무래도 재래시장이 싼 것 같아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귀찮아도 좀 더 부지런해지기로 했어요.” 실제로 재래시장과 대형 마트에서 파는 신선식품 값을 비교해 봤더니 재래시장이 20~30% 더 싼 경우가 많았다.

서울 방학·독산·역삼동의 재래시장 세 곳과 이들 소재지 반경 1㎞ 이내의 대형 마트에서 직접 채소와 과일을 사면서 값을 비교해 봤다. 남문시장에서 1000원에 파는 애호박은 홈플러스 금천점과 롯데마트 금천점에서 1300원이었다. 이마트 역삼점은 포항초를 1780원에 내놓았으나 바로 뒤의 도곡시장에서는 1500원에 팔았다.

공산품을 유명 대형 마트보다 더 싸게 판다는 매장에도 손님이 몰렸다. 농수산홈쇼핑이 운영하는 ‘700 마켓’은 인테리어에 돈 들이지 않고 판매 품목을 700여 가지 생필품으로 한정해 단가를 낮췄다. 이 회사의 안중길 상무는 “대형 마트보다 몇백원 아끼겠다고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글=박현영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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