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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머니게임>9.세금 도피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디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의 세계는 「한낮의 동굴」에 비유된다.전문적이고도 첨단의 금융지식이 요구되는 곳이기에 초보자나 일반인에게는 늘 어두컴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이런 환경은「돈세탁」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곧잘 연결되기도 한 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로 1시간30분 남쪽으로 날아가면 케이만 군도가 나타난다.한때 해적의 소굴이었던 이곳 수도 조지타운에는 무려 5백50개에 달하는 은행지점이 자리잡고 있다.이곳은행들의 총자산은 4천억달러나 되지만 막상 현금 을 만지는 은행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름뿐인」회사다.
은행.펀드.보험회사들이 조지타운에 거점을 마련하는 이유는 이곳이 세금이 없는 「조세도피처(택스 헤이븐)」이기 때문이다.여기는 특히 거액이라도 국경을 넘나드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세계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헤지펀드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뉴욕大출신 변호사 태넨 봄은 말한다.
헤지펀드 분야에서만 20년 넘게 일한 역외(域外)펀드 전문가인 그는 최근 1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또하나 케이만에 설립했는데 이 펀드는 부도직전에 몰린 회사중 장래성이 있는 회사를 골라 투자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고 귀띔한다.역외 펀드의 주된고객은 세계 각국의 거부들을 비롯해 미국 각 州의 공무원연금,일반기업의 종업원연금,보험회사등 각양각색이라는게 그의 설명.
요즘은 버진 아일랜드.버뮤다.바베이도스등 카리브해의 섬국가들은 물론 저지.건시등 유럽의 섬들간에도 「세금도피처」경쟁이 심하다.이 비즈니스에 가장 늦게 뛰어든 더블린(아일랜드 수도)은87년 세금을 없앤 후 3백개가 넘는 금융기관을 유치했으며,펀드관리자산이 1백억달러를 넘어서는등 빠른 속도로 커가고 있다.
아시아에선 말레이시아의 라부안 섬이 유일하다.
이같은 세금도피처를 중심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선 매년 3천억달러이상의 검은 돈이 세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총생산(GNP)과 맞먹는 돈이다.이런 자금은 대부분 범죄조직.마약밀매.불법이민 주선등과 맞닿아 있다.
검은 돈들은 일단 예금을 통해 제도금융권으로 들어간 후 수표.전신환 등의 형태로 국적이 다른 몇개의 금융기관을 거치면서 합법적인 돈과 섞인다.이후 투자나 대출.인출등의 형태로 주인의손으로 다시 돌아온다.이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곳이 세금도피처.이란 콘트라사건으로 유명한 미국의 노스 중령도 바로 조지타운에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미국 5대증권사의 하나였던 드렉셀社의 데니스 리빈은 78~85년까지 54개 회사의 내부정보를 불법으로 빼내 1천3백만달러를 벌었다.그는 파나마국적의 회사명의로 바하마에 있는 한 은행에 개설한 계좌로 이 돈을 입금시켰다.
이 증권사의 다른 직원들도 리빈의 돈벌이 방식을 눈치채고 같은 식으로 흉내내다 증권당국에 덜미가 잡혔고 결국 리빈의 부정한 돈세탁 사실도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그러나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는 돈세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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