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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 그래, 나 열등감 하나로 쑥쑥 클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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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212쪽, 8500원,
중학생 이상

“니 나이 때는 그 뭐가 X나게 쪽팔린데, 나중에 나이 먹으면 쪽팔려한 게 더 쪽팔려져.”

괴짜 선생 ‘똥주’의 일침이다. 집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일곱 살 소년 완득이. ‘그 뭐’가 많은 아이다. 카바레 ‘바람잡이’로 일하는 난쟁이 아버지와 어수룩하고 말까지 더듬는 가짜 삼촌,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가 ‘쪽팔렸다’. 그래서 혼자 동떨어져 숨어 살았다. ‘남의 약점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세상에서 상처 받기 싫어서였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는 완득이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안내자 역은 담임 교사 똥주가 맡았다.

똥주 때문에 완득이는 골치가 아프다. 수급대상자에 멋대로 이름을 올려놓질 않나, 야간 자율학습에 도망가다 걸린 완득이에게 “선생 밥줄 끊어지면 니가 책임질래? 니 아버지하고 지하철에서 마사지용 채칼이나 팔까?”라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질 않나. 오죽하면 완득이가 동네 교회를 찾아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며 기도까지 했을까.

하지만 똥주는 해결사다. 완득이가 아버지를 “병신”이라고 욕하는 앞집 아저씨를 때려 경찰서에 잡혀가자 “저 아이 무척 성실한 학생”이라고 ‘증언’을 해주고, 얼굴도 모른 채 잊고 살았던 완득이의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찾아준다.

책의 매력은 생동감과 속도감 넘치는 문체다. 도시 빈민가,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유쾌한 흐름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단순한 말 장난은 아니다. “시험 얼마 안 남았다. 내신 들어가니까 알아서들 해. 그렇다고 미술시간이나 체육시간에 대놓고 다른 과목 공부하지 말고. 그 선생님들도 X나게 공부해서 선생 됐거든요. 알았어?” “쪽 팔린 줄 아는 가난이 가난이냐? 햇반 하나라도 더 챙겨 가는 걸 기뻐해야 하는 게 진짜 가난이야” 등에서 드러나듯 ‘현장’ 냄새가 물씬 나는, 여운 짙은 유머다.

완득이는 많이 자란다. 처음엔 멋쩍기만 했던 어머니와 애틋한 정을 나누게 됐고, 모범생 정윤하와 ‘꽃냄새 나는 껌’ 같은 첫사랑도 한다. 그리고 킥복싱을 배우면서 인생의 목표를 찾는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 열등감과의 화해다. “아버지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204쪽)

『완득이』는 한번 잡으면 중간에 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다. 출판사 말대로 이제 우리도 청춘소설의 고전반열에 들만한 작품을 갖게 된 걸까. 우리 출판계가 청소년 소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불과 1년 전이다. 한해 만에 거둔 수확 치고, 속 꽉 차게 여물었다. 교훈을 심어주려 애쓰는 엄숙주의와 문제상황을 나열하는 선정주의에서 자유를 얻은 작품이다.

뒷얘기 하나. 출판사 창비가 약간 흥분한 듯하다.『완득이』 초판을 무려 2만부나 찍었단다. 김려령 작가가 지난해 마해송 문학상과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까지 받으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기대주라 해도, 초판 3000부가 보통인 요즘 출판계 관례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수치다. 또 이례적으로 초판에서부터 성인독자를 위한 양장본(9500원)까지 함께 내놓았다. 출판사 측은 “창비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소설가 공선옥·김연수, 평론가 원종찬·박숙경, 청소년 심사위원단 5명)들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은데다, 180명의 사전 서평단에서도 호평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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