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야기 ① - 산책자를 위한 다섯 마을 ‘친퀘 떼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CINQUE TERRE, IL DOLCE FAR NIENTE 무위(無爲)의 달콤함이여!

이탈리아 북부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면 논스톱 여행은 불가능하다. 리구리아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다섯 개의 작은 마을 ‘친꿰 떼레’(Cinque Terre)에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땅’을 뜻하는 친꿰 떼레는 몬테로소(Monterosso),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조레(Riomaggiore)를 포함한다. 이 중 어느 마을에도 소문난 유적지나 박물관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마을 자체가 수 세기 전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박물관이며 유적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바다와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 마주한 곳에 위치한 이 다섯 마을은 타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학적 특성 때문에 오랜 세월 고립돼 있었다. 배를 타야 타지와 가까스로 교류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철로가 놓이면서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 다섯 마을의 존재가 세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 사이의 일이다. 그 소문은 여전히 느리게 퍼지고 있다. 덕분에 자연환경은 거의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는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이탈리아 국립공원으로 등록돼 있다. 1997년에는 주변해역에 서식하는 희귀한 동식물과 산호를 보호하기 위한 해양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었다.

크리스탈 블루의 바다, 암석 절벽, 알록달록한 집들 사이로 계단식으로 일구어진 포도밭.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친꿰 떼레의 독특한 매력을 형성한다.

빛 바랜 파스텔 톤의 분홍, 노랑, 보라, 오렌지색의 낮은 건물들은 친꿰 떼레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광경이다. 아무렇지 않게 널려있는 빨래들이 정겹다.

친꿰 떼레의 매력은 그곳에 ‘없는’ 것들에서 나온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과 높은 빌딩숲 사이를 바쁘게 걷는 사람들, 그리고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간판 같은 것들이 거기엔 없다. 말하자면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벼락 선물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로도 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비좁아 대부분의 마을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그 덕에 이곳에서는 정주민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산책자일 수밖에 없다.
소박하고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요히 과거의 풍경과 하나가 된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들 사이에서 올리브 오일 상인을 마주친다면 ‘챠오(ciao)!’라고 인사를 건네 보라. 추억처럼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올리브열매 한두 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트래킹 코스 지도(출처 www.cinqueterre.it)

마나롤라(Manarola)에서 리오마조레(Riomaggiore)를 향하는 길인 ‘사랑의 길(Via del smore). 제일 유명한 길로 경사가 완만하여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마을 하나하나가 걷기에 매력적인 곳이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길들도 더 없이 훌륭한 트래킹 코스다.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길부터 전문가가 아니면 걷기 힘든 험난한 길까지 다양하다. 각 마을의 출구에는 다른 마을로 가는 길의 경로와 예상 소요시간, 난이도가 표기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컨디션에 맞는 길을 택하면 된다.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길은 No.2루트다. 해변가에 있어 에메랄드빛 바다와 지중해 특유의 높고 맑은 하늘을 감상하며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소요(逍遙)하다보면 ‘Il dolce far niente! 무위(無爲)의 달콤함이여!’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한없이 평화로운 이 길의 광경은 일상의 스트레스로 지친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준다.
No.2루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길 No.8루트도 매력적인 길이다. No.2루트보다는 가파른 편이지만 크게 무리가 되는 길은 아니다. 인적이 드문 No.8루트를 따라 올라가다 되돌아보면 이 길의 출발점인 베르나차는 저 아래에서 온갖 빛깔이 혼합된 작은 점으로 머물러 있다. 투정이 많은 아이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색색의 장난감 블록처럼 말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No.8루트에서 바라보는 친꿰 떼레의 광경을 최고로 꼽는다.
다섯 마을을 모두 잇는 길이므로 부지런히 걷는다면 첫 번째 마을부터 다섯 번째 마을까지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도 걸음도 넉넉하게 갖길 권한다. 한없이 게을러져도 좋은 곳이 아닌가.

No.8루트에서 내려다 본 Vernazza

* 어떻게 가지?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에 있더라도 라스페치아(La Spezia)행 기차를 타면 쉽게 친꿰 떼레에 갈 수 있다. 라스페치아에서는 세스트리 레반떼(Sestri Levante)행 기차를 타고 몬테로소나 리오마조레에서 내리면 된다. 기차의 뒷칸에 타면 친꿰 떼레를 지날 때 기차가 터널을 완전히 빠져 나오지 않아 도착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앞쪽이나 중간 차량에 타기를 권한다.
열차는 친꿰 떼레의 모든 마을에 서며 저녁 11시 반까지 운행한다. 거의 매시간 기차가 있지만 정확히 시간표대로 오지는 않으므로 일정을 유연하게 잡는 것이 좋다. 이탈리아 기차정보는 www.trenitalia.com에서 얻을 수 있다.

* 친꿰 떼레 카드
No.2루트를 트래킹하려면 루트 초입에 위치한 부스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친꿰 떼레 카드를 구입하면 버스, 기차, 블루패스(유료 트래킹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친꿰 떼레 카드는 마을에 위치한 인포메이션 센터나 라스페치아 중앙역에서 살 수 있다. 라스페치아 중앙역에서 카드를 사면 친꿰 떼레 들어가는 기차를 바로 이용할 수 있다. 1일권은 8유로, 2일권은 13.5유로이며 카드를 구입할 경우 트래킹 경로가 표시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 와인과 파스타
철로가 놓이기 전 친꿰 떼레에는 ‘고치gozzi'라는 작은 배들이 있었다. 고치(gozzi)는 포도를 양조업자들에게 전달하는 교량 역할을 했는데, 배들이 포도밭 앞에 다다르면 농부들은 바구니에 포도를 가득 담아 배에 실어 보내곤 했다. 지금 이 배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수 세기 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포도의 향기는 와인의 형태로 남아 사람들을 유혹한다. 친꿰 떼레산 와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시아케트라sciacchetra'라는 디저트 와인이다. 시아케트라는 최상급 청포도를 몇 방울의 즙만 남을 때까지 건조시켜 만드는 와인으로, 뛰어난 향과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레몬주 역시 친퀘 떼레의 특산품으로 순수한 알코올에 레몬껍질, 물, 설탕을 함께 숙성시켜 만드는 술이다. 레몬 재배는 친퀘 떼레의 주요 산업 중 하나로 몬테로소에서는 매년 레몬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음식으로는 페스토 소스의 스파게티가 유명하다. 페스토 소스는 리구리아 해변가에서 만들어진 조리법으로 보통 바질, 마늘, 치즈를 섞어 만든다.

인턴기자 팽지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