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인 경제적 박탈감이 시위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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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시닝시의 왕푸징백화점. 서부 대개발로 큰돈을 번 한족들이 150만원을 호가하는 술을 비롯해 고가제품을 쇼핑하는 곳이다<사진左>.
②칭하이성 시닝역에 가까운 티베트인 거리. 값싼 일용품들이 주로 거래된다. 구두를 닦는 남자에게 티베트인 모녀가 구걸을 하고 있다<사진右>. [사진=장세정 특파원]

중국 쓰촨성 캉딩 티베트 자치현의 한 어린아이가 20일 시위를 막기 위해 출동한 무장 경찰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라싸의 독립시위 여파로 티베트족이 거주하는 중국 각 지역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다. [캉딩 AFP=연합뉴스]

티베트(시짱·西藏) 불교 사원이 많아 ‘제2의 티베트’로 불리는 칭하이(靑海)성은 한족과 소수민족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다.

20일 오전 칭하이성의 중심 도시 시닝(西寧)에서 가장 번화한 창장(長江)로. 최근 3~4년간 ‘서부 대개발’ 바람을 타고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시닝의 최대 상권이다. 베이징(北京)의 번화가 왕푸징(王府井)에서 이름을 따온 왕푸징백화점 매장에는 고가 상품들이 가득했다. 2~5층에는 외제 피혁 제품과 의류들이 진열돼 있고, 깔끔한 옷차림의 부인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백화점 1층 주류 매장에서 베이징에서 보기 힘든 중국의 명주 우량예(五糧液) 50년산이 병당 1만2800위안(약 153만원)에 진열돼 있었다. 여성 판매원은 “50년산 우량예가 한 달에 두세 병 팔린다”고 귀띔했다. 옆 판매대에는 100g에 1만5600위안(약 187만원)하는 동충하초를 비롯해 제비집(1680위안)·전복(1380위안)·해삼캡슐(838위안) 등 고가 식품류가 즐비했다. 한족 중심 시닝 상류층의 소비 수준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시닝 남쪽 20㎞에 있는 티베트 불교의 고찰인 타얼쓰(塔爾寺) 입구의 관광상품 판매 단지 내 점포 주인들도 대부분은 한족이었다. 시닝 일대의 경제권을 한족이 독점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 시닝역에서 200m 떨어진 ‘티베트인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폭 4m 남짓 좁은 골목길에는 수백 개의 영세 상가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티베트의 라싸(拉薩)와 르카쩌(日喀則) 등지에서 티베트 주민들이 생산한 가내수공업 제품을 팔고 있었다. 대부분 1~10위안의 값싼 생필품들이었다. 시닝의 티베트인을 비롯해 회족·토가족 등 가난한 소수민족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한 노점상은 “하루 종일 물건을 팔아도 50위안을 못 벌지만 가족 생계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서부대개발 차원에서 2006년 7월 시닝과 라싸를 연결하는 칭짱(靑藏)철도가 뚫렸다. 산간 오지였던 칭하이성 곳곳에 포장도로가 깔렸다. 그러나 개발 혜택은 현지의 소수민족보다 한족에게 대부분 돌아가고 있다고 소수민족들은 불만을 털어놓았다.

인도 다람살라에 본부를 둔 티베트 망명정부는 “칭짱철도 개통으로 한족의 티베트 유입이 빨라져 티베트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한족이 경제권을 독식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시장경제에 먼저 적응해 자본주의 상술을 익힌 한족들이 발빠르게 개발이익을 싹쓸이한다는 불만도 많다. 전문가들은 “라싸 폭력 시위 도중 티베트 청년들이 한족 시민들을 집중 공격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티베트인은 아직도 산간 오지에서 양을 기르고 산다. 도시의 티베트인은 대부분 빈민층이다. 주요 원인은 교육 문제에도 있다. 시닝의 난다제(南大家)초등학교의 경우 한 학급 60명 중 티베트인은 두 명에 불과했다. 티베트인의 문맹률은 90%에 이른다. 자연히 제대로 취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닝 시내 중신(中心)광장과 시닝역 주변에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티베트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티베트인은 지금도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는 쉽지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당장 더 절실한 문제는 생계를 보장해줄 빵과 돈인 것 같았다.

시닝(칭하이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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