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첫 탄핵 정국] 총선 계산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이 4.15 총선의 승부를 가를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총선 이슈가 盧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여부로 옮아가면서 총선 판도가 친노(親노무현) 대 반노(反노무현)의 대결 구도로 짜일 가능성이 커졌다. 동시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발의 자체가 선거 쟁점이 됨으로써 '야당 심판론'의 수위도 높아질 전망이다. 결국 盧대통령의 열린우리당과 두 야당의 격돌이 벼랑 끝 전쟁을 치를 전망이다.

양측의 팽팽한 힘겨루기로 정치적 이득을 보는 쪽은 어디가 될 것인가. 여야 지도부는 제각각 탄핵 정국이 자신들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야권은 우선 盧대통령과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이 탄핵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면 친노 성향을 보였던 각계의 세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10일 "탄핵이 힘을 받으면 친노 세력이 뭉쳐지는 성향도 있지만 반대로 터무니없이 盧대통령을 감쌌던 사람이나 세력들이 흩어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 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을 결집할 기회로 본다. 한나라당의 경우 영남에서 친노 대 반노의 대결 국면이 형성되면서 '차떼기'당이란 비난 여론과 당 내분으로 느슨해졌던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위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이 노란색 점퍼를 입고 '형제당' 운운하면서 민주당 지지표를 이완시켰다"며 "그러나 민주당이 반노의 중심축에 서서 탄핵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를 분명히 하면 잃어버린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 구도를 두려워하던 민주당은 탄핵 정국 주도를 통해 3강 구도의 복원을 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일부 수도권.소장파 의원 사이엔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야권이 떠안게 되면서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탄핵안 발의를 비판하고 정국 혼란을 우려, 탄핵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게 형성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한나라당 최병렬.민주당 조순형 체제가 무너지면서 야권이 구심점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이 실패할 경우 책임론을 둘러싸고 두 야당에서 잠복했던 지도부 불신임론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계 재편이 총선 전에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이는 야권 분열로 이어지면서 총선 가도에 적신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는 계산이다. 두 야당의 정략적 탄핵을 고정 분모로, 국정 혼란을 걱정하는 여론과 친노 지지층의 결집을 가변분자로 잡아 계산하면 '탄핵 정국=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내부적으론 탄핵 정국이 총선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수도권의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도 높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정치개혁과 안정을 바라는 수도권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야당은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수도권 의원들이 탄핵에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내친김에 "참여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되기 위해서는 이번 총선밖에 기회가 없다"거나 "총선 후 제2의 탄핵이 시도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홍보전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청와대의 핵심 인사는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야당이 지난 대선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지금의 상황은 지켜보기만 해도 이기는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일각에선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여권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귀추가 주목된다.

이정민.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