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폴크스바겐 경영난 수렁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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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유럽 최대이자 세계 4위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독일 폴크스바겐(VW)사에 빨간 불이 켜졌다.

차는 안 팔리고 수익은 반토막이 났기 때문. 영업실적을 발표한 9일(현지시간) VW의 볼프스부르크 본사는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독일 언론들은 전했다.

순이익은 11억유로(약 1조5918억원)로 2002년에 비해 58%나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4억9100만유로를 기록해 48% 줄었다.

업계에선 VW가 당분간 활기를 되찾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01년까지 최대 실적을 올리며 잘 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왜 이렇게 흔들리게 됐을까.

◇곪아 터진 문제=VW가 경영난에 빠진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가격은 타사의 경쟁 차종보다 비싼데 품질은 미치지 못한다는 불평이 많다.

일간 빌트지는 VW 차종이 경쟁 차종보다 평균 8%가량 비싸다고 진단했다.

가장 저렴한 차라고 내세우는 경차형 모델 루포는 1만유로(약 1천5백만원)가 넘으며, 소형차 골프모델은 적어도 2만유로를 줘야 한다.

반면 전문지 아우토 빌트가 차의 고장과 고객의 불만 접수와 관련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VW는 33개 브랜드 가운데 품질면에서 최하위권인 30위를 차지했다.

모델 정책에서도 실패했다. 우직하고 점잖은 모델을 고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형, 쿠페(세단보다 작고 문이 2개인 2~5인승 차)형, 카브리오(지붕을 개폐할 수 있는 차)형 모델 개발에 소홀해 고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또 방만한 생산관리도 문제로 떠올랐다. 1백가지나 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엔진을 생산하는가 하면 비싼 생산설비가 충분히 가동되지 못해 평균 6개 라인 중 하나는 과잉설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로화 강세로 인한 막대한 환차손과 개발에 수십억 유로를 쏟아 부은 최고급 차종(파에톤.벤틀리 컨티넨틀 GT.부가티 파이론 등)의 판매 부진이 뒷덜미를 잡고 있다.

◇구조조정 단행=베른트 피셰츠리더(56)VW 회장은 "대대적인 군살빼기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오히려 현 상황이 심각하면 할수록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며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VW는 그동안 막강한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구조조정 작업을 못해왔다. 그래서 이번의 위기상황을 활용해 사내 반발을 자연스레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피셰츠리더 회장은 "내년 말까지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감원 규모는 5천명 수준으로 주로 영업직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원 인력의 절반은 독일 내 사업장의 근로자들이다.

그러나 그는 신규 채용을 동결할 것이라는 소문은 부인했다. 향후 2년간 회사의 경비 절감액 목표를 당초보다 두배 늘려 40억유로로 정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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