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 살해 → 매장’ 하루 만에 모두 끝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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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 초등생 살해 용의자 정모(39)씨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씨의 ‘오락가락 진술’에 경찰 수사도 시원스레 내달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7일 “완강한 부인에서 조금씩 인정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지만, 말이 왔다갔다 해 치밀한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과 ‘정씨가 렌트한 차에서 발견된 이혜진(11)·우예슬(9)양의 DNA’,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정씨를 압박하고 있다. 정씨는 집을 조사하러 온 경찰에게 “(초등생 실종 당일인) 지난해 12월 25일 집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용의자로 경찰에 검거된 16일에는 “낮에 아는 사람과 있었고 밤에 차를 빌려 대리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17일에는 “오전에 술을 마시고 오후 6시쯤 대리운전을 나갔다가 손님이 없어 9시에 들어왔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 정씨가 일하던 F대리운전 업체는 “지난해 12월 25, 26일 정씨가 일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황과 과학적 증거에 정씨는 범행 일부를 자백했다.

정씨 검거와 관련해선 경찰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실종 직후인 1월 초 김모(54)씨가 이양 등의 실종 소식을 듣고 경찰을 정씨 집으로 데리고 가 정씨가 범인일 것이라고 제보했다. 그러나 경찰은 정씨에게 특별한 혐의를 찾지 못했다. 당시 부실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혈흔 검사와 행적을 조사했지만 당시는 경찰력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왜 납치·살해했나=정씨는 경찰에서 납치·살해 동기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이 밝혀야 할 일차적 사안이다. 정씨는 납치 뒤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순 어린이 유괴는 아니다. 원한 관계에 의한 살해 가능성도 낮다.

범죄 전문가들은 정씨가 어린이와의 성적 접촉을 선호하는 ‘소아 기호증’ 같은 성 도착증 환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경찰은 정씨의 집 PC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포르노 영상물이 발견된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씨가 납치 뒤 살해한 이유는 ‘얼굴이 알려질까 두려워서’라는 분석이 많다. 같은 동네에 살아 얼굴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4년간 강력계 수사관으로 근무한 김원배(59) 경찰청 사건분석연구원은 “성폭행이 목적인 어린이 범죄는 대부분 피해자 근처에 사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뒤 살인으로 이어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살해·사체 토막 장소는=수사 초기, 경찰은 범인이 자신의 집에서 어린이를 살해했을 것으로 봤다. 혜진양과 예슬양이 사는 안양 8동을 중심으로 독거남 집을 탐문해 루미놀 시약 검사(혈흔 조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정씨의 집에서 혈흔을 찾지 못했다.

정씨는 피해자의 집과 불과 40여m 떨어진 곳에서 5년여를 살았다. 동네 사람에게 그는 낯익은 사람이다. 목격자를 피하기 위해 정씨는 제3의 장소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혜진양의 시신은 수원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안양시 남쪽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동선 어딘가에서 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정씨는 구체적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냉동 흔적은=국과수가 혜진양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냉동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냉동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살해한 뒤 일정 시간 보관하지 않았겠느냐’고 분석하고 있다. 정씨는 실종 사건이 발생한 당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까지 뉴EF소나타를 렌트했다. 18시간이다. ‘납치-살해-토막-유기-세차’까지 모두 처리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냉동 보관 후 이동’이라면 시간이 더 모자랄 수 있다. 경찰은 다른 차량이 범행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혜진양의 사체가 발견된 수원 호매실 IC 인근 농장의 주인은 운전석이 종이 박스로 가려진 승합차가 장시간 주차된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추가 범행 없나=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지난 1년여간 잇따라 실종·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정씨가 경기 남부 연쇄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2004년 전화방 도우미 실종 사건 때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남은 마지막 통화자가 정씨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긴급 체포됐었다. 그러나 결정적 물증이 없어 풀려났고 이후 이 사건의 진범이 잡혔다.

1월 초 정씨를 유력한 범인으로 꼽고 경찰에 신고했던 김모씨는 “경찰에 신고까지 했는데도 수사를 제대로 안 했다”며 3년 전 새벽 귀갓길에 정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강인식·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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