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경제 발전시켜 준다며 역사 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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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티베트 라싸에서 벌어진 시위를 강경 진압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16일(현지시간) 한 인권 운동가가 프랑스 파리 중국대사관 정문 위에 걸려 있는 중국 국기를 내리고 대신 티베트 깃발을 걸려 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깃대를 부러뜨림으로써 티베트 깃발이 게양되는 사태를 막았다. [파리 AP=연합뉴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3·14 티베트 사태’를 계기로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티베트인들의 물리적 저항을 초래한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국가 분열에 민감해 하면서 ‘중화(中華)’라는 울타리를 내세워 민족 간 통합만을 추구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소수민족의 불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 자극한 역사 문제=1949년 건국 초기엔 사회주의 국제주의 노선에 따라 55개 소수민족에 대해 다소 유화적이었던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으로 자신감을 얻은 86년부터 고삐를 죄었다. 이른바 ‘변강공정(邊疆工程:변경 지역 역사 작업)’이다. 러시아·카자흐스탄·인도·몽골·북한·베트남 등 14개 국가와 인접한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상대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낙후한 변경 지역의 소수민족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통합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베이징(北京)의 한 전문가는 “국가 분열 상태를 피하려는 중국 당국의 통합 조치가 각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해당 소수민족이 크게 반발했다”며 “고구려와 부여·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2002년의 동북공정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경제적 요인도 작용=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소수민족들은 “경제 개발을 내세워 자원을 빼가고, 한족들이 현지 경제권을 장악하면서 소외감을 키웠다”고 반발한다. 티베트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는 광활한 면적에 자원도 풍부하다. 이미 중국 정부는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보내는 서기동수(西氣東輸), 서부에서 생산한 전력을 동부로 보내는 서전동송(西電東送)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진척시켰다. 티베트인들은 2006년 7월에 개통된 칭짱(靑藏)철도(시닝~라싸)에 대해서도 “티베트의 자원을 약탈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며 “티베트 경제가 한족들에게 갈수록 종속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서 티베트인들이 한족을 집중 공격한 데는 이런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장 지역의 경제 건설을 주도하는 건설 병단(兵團)에 대한 위구르인들의 시각도 곱지 않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신장자치구에서 분리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세력의 훈련기지를 급습하기도 했다. 중국 내 동포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지린(吉林)성이 백두산에 대한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관할권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시닝=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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