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거래 … 파생상품으로 얽히고 설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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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묻지마 거래’로 시작해 ‘물결 효과’로 증폭되고, ‘초단기 시장’의 위축으로 결정타. 미국 베어스턴스의 몰락 과정에서 등장하는 낯선 키워드들이다. 이 키워드들은 월가가 구축한 금융 제국의 ‘속살’이기도 하다. 이를 풀어보면 ‘위험은 줄이고, 수익률은 높이는’ 첨단 파생상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미국발 금융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거래 상대방 위기(counterparty crisis)=보통 은행들은 고객의 계좌라는 눈에 보이는 자산을 기반으로 영업을 한다.

하지만 미국 투자은행들은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했다. 파생상품을 통해 또 다른 투자자와 2중, 3중의 거래관계를 텄다. 결국 누가 자신의 거래 상대방인지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다. 자꾸 부도가 나면 또 누가 부도 날지 몰라 시장 전체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시스템 자체가 마비되는 것이다. 마치 여러 집이 동시에 이사하기로 한 날 어느 한 곳에서 잔금을 못 치르면 아무도 이사를 못 하는 경우와 같다.

◇물결 효과=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다.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모르는 탓에 투자자들은 ‘자금난’ 소문만 들려도 돈부터 뺀다. 베어스턴스의 사례가 그랬다. 호수 위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전체로 퍼지는 것과 같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투자자가 (투자은행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면 실제 속을 보여주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신용등급 하락, 투자자금 인출이 이어지고 보유자산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추락한다. 위기는 증폭된다.

◇증권 환매시장=만기 하루짜리 초단기자금 시장을 일컫는다.급전이 필요한 투자은행들은 이시장에서 대개 보유 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빌렸다. WSJ에 따르면 대형 투자은행들은 자산의 20% 이상을 이렇게 운용했고, 전체 시장은 4조5000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올 2월 중순 이후 이 시장은 급속히 위축됐다.

모기지 연계 채권 등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아무도 채권을 받고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 비상구’까지 막히자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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