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의인물탐험>"황제의 회상록"중 하드리아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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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자신의 죽음의 옆모습을 바라보며무거운 다리를 침대 위에 걸친채 다음 발작이 언제쯤 일어날까 염려하는 한 인간이 있다.
그는 대로마제국의 황제다.한때는 여러 나라를 정벌한 젊고 용맹한 장군이었고 또 한때는 경제를 개혁하고 법률을 제정해 로마를 안정시킨 지혜로운 통치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 발작이 일어나면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한 노인에 불과하다.
그 노인이 자신의 죽음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황제가 될 양자 안토니우스에게 편지를 쓴다.아니 편지 형식을 빌려 자신의지난 삶을 돌아본다.
젊은날의 과오를,통치자 시절의 냉혹을,지나치게 신의 자리에 올라 버린 권력의 허구를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햇빛에 마르고 바람에 담금질된 그의 삶처럼 가볍고 담백하다.
그런 말투로 여행과 사냥,정치와 경제,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통찰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을 여러 차례 읽었다.
20대 초반에 읽었을 때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며 자신의미래를 예견하는,시인의 영혼을 지닌 젊은 야심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대 후반에 읽었을 때는 그의 휴머니즘적 시각에 대해 생각했다.『내가 짐승의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기 때문에 인간의 피를 그렇게 아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하는 대목에서,그가 로마제국을 번영시킨 가장 큰 힘은 야심이나 의무가 아니라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다시 읽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또 다르게 읽힌다.서기 전 2세기,올림푸스산의 신들은 사라지고 그리스도는 아직출현하기 전의 세상,그러니까 홀로 있는 인간의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고뇌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신이 없는 시대,죄를 사해줄 존재도,무거운 짐을 나눠질 존재도,혹은 위안의 말을 간구할 대상도 없는 시대에 황제의 임무를맡아,타의에 의해 신의 위치에까지 올라야 했던 한 인간의 고독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모든 뛰어난 역사소설은 그것을 읽는 시대에 의해 늘 새롭게 현재화된다고 한다.
신화가 없는 시대,물질문명에 의해 신의 자리가 잠식당하는 이시대는 하드리아누스가 살았던 시대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므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 시대에도 아직 유효한 마지막현자의 모습으로 남을 인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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