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독일通信 경영개혁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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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독일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나라 통신분야를 독점하고 있는 독일통신의 악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옛 동독지역에 사는 한 학생은 전화를 신청하고 2년이나 기다릴 정도로 독일통신은 고객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다.
독일제조업의 경우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대부분의 서비스업은 형편없는 수준이며 경쟁과도 담을 쌓고 있다.많은 식당이 아직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으며 항공요금은 턱없이 비싸다.문 닫을시간에 가게에 들어서면 점원들로부터 눈총을 받기 일쑤다.
상점들의 영업시간도 고객의 편의와는 거리가 멀다.모든 가게는토요일 오후 1시반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반드시 문을 닫아야 한다.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이 일요일에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차를타고 72㎞ 떨어진 폴란드로 가야 한다.세차를 하고자 할 때도마찬가지다.
독일인 역시 이같은 불편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대충 참고 지낸다.좋은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것을 요구할 줄도 모른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독일은 그러나 이즈음 자신들의 형편없는서비스가 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국내기업들이 세계로 진출하고 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커지면서 독일의 재계 지도자들은 통신분야뿐 아니라 금융.수송 등 주요 분야 에서도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행은 독일은행보다 생산성이 46%나 높다고 뉴욕의 컨설팅회사 매킨지는 92년에 실시한 한 조사를 통해 밝히고 있다.
독일은 또 강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의 5.8%에 비해 월등히 높은 9.4%라는 실업률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매킨지보고서는 독일이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킬 경우 일자리를 거의 5백만개나 늘릴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독일 최대의 서비스회사인 독일통신도 요즘 이런 압력을 받고 있다.통신시장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라는 유럽연합의 관련규정에 따라 독일정부는 이 회사를 내년초 민영화하기를 바라고 있다.이럴 경우 주식시장에는 4백3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의 물량이 쏟아질 것이고,98년에는 미국의 AT&T나 벨사우스와 같은 외국 전화회사들이 독일통신과 직접 서비스경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보인다. 문제는 3천7백만명의 고객과 22만5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공룡 같은 이 회사가 이같은 상황변화에 잘 적응할 것이냐는 점이다.회사측은 물론 그렇다고 말한다.
지난 3월 독일통신은 내부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소니의 고위간부 론 조머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마케팅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조머는 기존의 통신망을 현대화하기 위해 58억달러를 투자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이같은 투자는 지난해 4백44억달러였던 매출액을2000년에 5백55억달러로 확대해 놓을 것이라 고 회사측은 밝힌다. 조머 사장은 동시에 이 기간에 조기퇴직 등을 통해 직원의 4분의 1을 줄이고 남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고객을 중시하도록 서비스교육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오랜 타성에 젖은 이 회사가 이같은 경영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뤄 낼 수 있을지 걱정어린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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