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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지원과 규제 사이 아슬아슬 ‘强 장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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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3면

신동연 기자

#장면1=지난 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 회의에 참석한 장·차관들을 위해 19개의 자리가 준비됐다. 그중 하나가 특별했다. 한가운데 놓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리였다. 건너편에 지식경제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마주 보고, 옆으론 외교통상부 장관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이 배석하는 모양새였다. 곽승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김중수 경제수석의 자리는 맞은편 45도 각도쯤의 구석진 곳에 배치됐다. ‘MB노믹스의 사령관’ ‘부총리급 장관’으로 불리는 강 장관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읽어볼 수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앞으로 5~10년간 잘못하면 우리 경제가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 “모든 정책의 속도를 6개월 앞당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원활한 정책 조율을 ‘주문’했다.

MB노믹스 사령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장면2=일요일인 지난 9일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국토해양부·국세청이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했다. 철근 매점매석을 막기 위해 집중 단속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적정재고 이상을 갖고 있으면 사재기로 간주하고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엄포’까지 나왔다. 하루 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판교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철근 사재기를 끝까지 추적하고 부당 이익에 대해 과세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올드보이의 막강 파워

10년 만에 정부로 복귀한 ‘올드보이’ 강 장관은 한 달여 만에 경제 각 부처를 휘어잡았다. 오랜 관료 경험과 대통령의 신임, 강한 소신이 밑천이다. 강 장관의 힘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14일로 예정돼 있던 두 번째 경제정책조정회의는 그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하루 전 갑자기 취소됐다. 경제 정책의 사령탑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다른 부처의 업무보고에 참석하는 장관도 그가 유일하다. 강 장관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하는 거시정책협의회 의장도 맡고 있다. 재정부가 금융과 환율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할 통로인 이 협의회는 그가 제안해 구성됐다.

강만수 장관의 철학과 정책 방향

자유무역협정(FTA) 전략 등을 총괄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도 그의 소관이다. 경제분야의 부처 간 협의체 6개 중 절반을 그가 맡고 있는 것이다. 경제활성화회의 등 나머지 3개는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다. 재정부에선 강 장관이 대통령과 총리 다음으로 막강하다며 ‘좌의정’으로 부른다.

그의 영역 확장은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금융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의 민간위원 수가 3명에서 1명으로 줄면서 재정부의 입김이 강해졌다. 금융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모두가 민간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이곳의 재정부 출신 관료들에 대한 강 장관의 영향력 또한 새삼 부각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기획재정부 인사에선 ‘복심’으로 불리는 최중경 1차관에 이어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최상목 정책보좌관 등 그가 아끼는 관료들이 실장이나 국장으로 승진했다. ‘정책 수행이 시스템보다 인치(人治)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측근 발탁해 전진 배치

강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통화정책의 총책임은 정부에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경영만 민간에 맡기는 싱가포르식을 검토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시장이나 다른 부처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였다. ‘황소고집’으로 불릴 만큼 소신이 강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국회 청문회와 장관 취임사 등을 통해 그는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민이 살기 좋아진다”며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소신을 되풀이했다. ‘성장은 수출로, 투자는 감세를 통해 각각 촉진하고, 이를 위해 환율과 물가는 어느 정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평소 “물가 등 대내균형 못지않게 경상수지 등 대외균형도 중요하다” “일자리를 잃는 게 좋으냐 물가가 약간 올라가는 게 좋으냐는 데 대한 선택의 문제다”라고 강조해 왔다.

올드패션의 한계

문제는 이 같은 인식이 시장의 현실과 충돌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강 장관의 정책 추진 방식을 두고 ‘새마을운동 시절의 올드패션’이란 말도 나온다. 폐쇄경제 시절의 개발경제 마인드에 바탕을 둔 ‘소신’을 21세기의 열린 경제에 그대로 관철하려 든다는 비판이다. 강 장관은 최근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도 반대가 많았다”며 대운하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대표적인 게 환율정책이다. 달러당 1000원 돌파를 눈앞에 둘 정도로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데엔 ‘원화 가치 하락’을 바라는 강만수-최중경 라인의 의중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정부가 환율 상승을 용인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달러 가수요가 일고 공급은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임기영 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는 “수출지상주의나 중상주의 정책을 다시 보는 것 같다”며 “환율 상승이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물가와 내수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원화 값이 떨어지면 일부 수출기업의 이익이 늘지만 국민이 가난해지는 ‘역분배’가 발생하고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임 교수는 이를 “수입품을 더 비싸게 써야 하는 사람들이나 기러기 아빠 등의 돈을 수출 기업의 금고에 넣어주는 격”으로 비유했다.

법인세 인하도 마찬가지다. 당초 연 1%포인트씩 내리려던 걸 두 차례에 걸쳐 5%포인트 내리는 걸로 앞당겼지만 증권사들은 제조업보다는 은행 등 금융업이 더 큰 혜택을 볼 것으로 분석한다. 제조업들은 이미 투자세액공제 등으로 실질 세율이 낮아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면 주요 은행의 지분 과반수를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만 득을 보고 제조업 투자 확대라는 정책 효과는 미미해진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는 내수 진작에 효과가 더 큰 근로소득세를 낮춰 민간 소비를 늘리고 근로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며 “감세 정책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만수 경제팀의 정책이 지원과 규제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도 시장을 헛갈리게 한다. 법인세 인하와 연결납세제도 도입, 서비스업 특소세 인하 등 기업 지원방안을 쏟아내면서 다른 편에선 물가와 사재기 단속 등 직접적인 시장 개입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작은 정부에 큰 시장을 목표로 한다지만 거기에 맞는 툴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며 “과거에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시장과 맞지 않은 친기업 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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