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유가 급등의 끝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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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8면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14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은 전날보다 배럴당 1.15달러 오른 100.18달러로 거래를 마감해 사상 처음으로 100달러를 돌파했다.

지금까지 국제유가는 2차 오일쇼크 때인 1980년 4월이 사상 최고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계산방식에 따르면 당시 유가는 지금 가격으로 따져 102달러53센트였다.

전쟁이나 수출금지 조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갑작스러운 감산 등 극적인 공급쇼크가 일어난 것도 아니다. 현재 국제 원유시장에 물량부족 사태는 없다. 상업재고는 높은 수준이고 정제능력도 원활하다. 그럼에도 왜 유가는 계속 치솟는가.

수요 측면에서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소비대국들의 수입 급증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의 경우 해마다 15% 비율로 소비가 늘고 있지만 국제유가의 지속적 급등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글로벌 저성장 우려가 깊어지면서 석유 수요는 도리어 크게 주춤해질 것이며 경기후퇴의 심도에 따라 국제유가는 배럴당 80~90달러 선으로 떨어지리라는 전망도 한편에선 나돈다.

OPEC 각료회의도 “시장에 원유가 충분한데도 값이 계속 오르는 것은 미국경제의 부실경영과 원유에 대한 투기 때문”이라며 원유 공급을 늘려 달라는 세계 최대 소비국 미국 부시 대통령의 두 차례 요구를 거절했다.

오늘의 고유가 행진은 원유의 수요와 공급 등 시장의 펀더멘털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급 이외의 요인이라면 금융적 요소와 시장심리를 들 수 있다. 달러가치의 지속적인 하락과 인플레 우려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원유를 다투어 사들이고 여기에 투기자본까지 가세해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뉴욕의 서부텍사스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의 가격 차이가 최고 4달러까지 벌어진 것은 그만큼 뉴욕시장에 투기적 수요가 왕성하다는 방증도 된다. 국제유가가 수급 이외의 요인으로 움직인다면 OPEC가 증산에 나설 이유가 없고 유가는 달러의 움직임에 따라 당분간 요동칠 가능성도 크다.

지정학적 요소에 지나치게 민감한 원유시장의 심리도 문제다. 연초 뉴욕시장에서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했을 때 주원인으로 12월 27일 파키스탄 야당 지도자 베나지르 부토의 암살이 지적됐다. 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미국과 이란 간의 대치,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같은 개별 산유국들의 불안한 국내 정세, 크고 작은 정유시설의 화재 등이 펀더멘털에 영향을 주는 단골 메뉴로 꼽혀 왔다.

이들 신호 중 상당수는 과장되고, 잘못되거나 별 의미 없는 것도 적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유가는 크게 요동쳐 왔다. 개별 정유공장의 사고처럼 조그만 변화가 전체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민감한 시장구조가 바로 국제 원유시장이다. 이런 시장심리 때문에 1990년대 닷컴 거품 때처럼 사람들이 가격이 오를 것으로 믿고 있는 한 국제유가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비관하는 시장 분석가도 적지 않다.

반면 100달러대의 고유가가 석유의 황금기는 고사하고 석유시대의 끝장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하는 전문가 그룹도 있다. 유가 급등으로 증산 유인이 커지고 채유 기술이 날로 고도화하면서 세계의 원유 공급은 현재 하루 8600만 배럴에서 2017년까지 1억1500만 배럴까지 늘어난다는 전망이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줄고 대체연료 개발이 활성화되면 석유는 남아돌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유가의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이 함께 얽혀 있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원유시장이 상승 요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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