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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비중 30% 붕괴 눈앞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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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6면

‘30% 벽’이 깨지기 직전이다. 외국인이 손에 쥔 주식 얘기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 증시의 외국인 비중(시가총액 기준)은 13일 현재 30.6%까지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20%대로 들어설 전망이다. 지금껏 외국인은 증시의 ‘안방마님’이었다. 때론 돈 보따리를 선물하며 주가를 띄웠고, 때로는 뉴욕 증시의 독감 바이러스를 옮기며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마침 외국인에게 투자 빗장이 완전히 열린 지 꼭 10년째다. ‘30% 붕괴’에 담긴 숨은 뜻은 무얼까. 그 안에서 안개 속 증시를 헤칠 등대를 볼 수 있다.

지금 맞는 매가 福으로 돌아온다

눈물고개 10년

1992년 1월 3일, 영국 투자펀드인 FKSC가 대우증권을 통해 “10억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사겠다”는 주문을 냈다. 외국인에게 닫혀 있던 증시의 투자 문호를 처음으로 여는 순간이었다. 이날부터 제한적이나마(주식 총수의 10%) 시장이 개방 물꼬를 텄다.

재무부와 증권사 직원들은 첫날 성적에 눈이 동그래졌다. 예상을 넘는 1000억원어치의 주문이 쏟아졌다. 외국인의 구미를 당긴 것은 ‘한국은 싸다’는 공감대였다.

그리고 98년 5월, 여덟 차례 완화했던 외국인 지분 규제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마침내 완전 철폐됐다. 외국인에겐 ‘바겐세일 파티’와 같았다. 싼 주식을 마음껏 담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때부터 외국인 파워는 하늘을 찔렀다. 외국인 돈에 증시가 울고 웃어야 했다. 불안한 세계경기 탓에 외국인이 개방 뒤 처음으로 순매도를 보인 2002년엔 ‘뉴욕시황을 살피느라 한국인이 새벽잠을 설친다’는 유행어도 돌았다.

외국인은 1998~2004년 거래소 시장에서 47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시가총액 비중은 44%까지 치솟았다.<그래픽 참조> 증권선물거래소 강홍기 종합시황총괄팀장은 “외국인은 닷컴주 거품이 꺼지던 시점부터 오히려 매수세를 강화해 더 많은 주식을 손에 쥐었다”며 “국내 기관과 개인은 주식을 팔기에 바빴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돌연 2005년부터 방향이 달라졌다. 외국인이 주식 매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년여간 47조원어치를 팔아 현금을 챙겼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구조조정으로 한국 기업의 가치가 재평가받아 주가가 크게 오른 데다 원화 강세로 환차익까지 두둑해지면서 외국인의 차익 실현 욕구가 커졌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인도처럼 한국을 대체할 강력한 신흥시장이 부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흐름은 점점 속도가 붙었다. 외국인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판 주식만 37조원에 달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겹친 탓이다. 돈줄이 마른 해외 투자자들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듯 한국 주식을 내다팔기 바빴다. 결국 2006년 말 37%였던 외국인 비중은 어느덧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마지노선

지난 10년을 복기(復棋)하면 외국인 매매의 ‘큰 그림’이 드러난다. 외국인은 ‘매수→매도’로 축을 옮기며 이미 본전을 뽑았다. 어느새 산 것보다 판 게 많아졌다는 통계만 봐도 그렇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98년 5월 완전 개방 이후로 보면 누적매매는 이미 순매도로 돌아섰다”며 “외국인은 이제 한국에 투자했던 원금을 거의 회수했다”고 말했다. 한국증권에 따르면 장내매매로 집계되지 않는 ‘직접투자분(20조원)’을 빼도 92년 이후 외국인 평가이익은 약 234조원에 이른다. ‘포트폴리오 투자분’의 시가총액(241조원)에서 누적순매수(7조원)를 뺀 수치다.

그렇다면 관심사는 앞으로의 이익실현 규모다. 신영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외국인 비중은 신흥시장이 평균 25%, 선진시장은 33% 수준”이라며 “한국이 그 중간이라면 27~28%가 적정한 비중”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외국인 매도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점차 마무리 국면에 가까워진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특히 시세차익을 노린 게 아니라 경영권 참여나 배당금 수령 같은 ‘장기 포석’을 하는 외국인도 갈수록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유액 기준으로 98년 3조원이던 외국인의 장기 목적 주식투자는 올 1월 20조원으로 늘었다.

디커플링

하반기를 넘어야 외국인 매수가 재개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과거에 외국인 매매는 미 증시와 철저히 연동됐다. 그런데 미국에서 2분기를 넘어야 금리인하 효과가 가시화하고 경기도 슬슬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완전한 ‘디커플링(decoupling)’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부쩍 높아졌다는 점에서 뉴욕 증시가 고꾸라져도 잘 버틸 것이란 기대감이 물씬했다. 지난해 봄부터 서브프라임 불씨로 미 경제와 뉴욕 증시가 흔들릴 때 상하이 증시와 한국 증시는 여름까지 줄곧 오르막길을 달렸다.

그러나 불씨가 화산이 되면서 결국 신흥국 시장은 서브프라임 전염 경로에 휩싸였고, 주가는 미국처럼 하락 궤도를 달렸다. LG경제연구원 박윤수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미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도체·하이테크 기업이 발달해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는 미 경기가 하강하면 한국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선험적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곳보다 ‘매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다. 실제로 매도에 불이 붙은 지난해 여름 이후 외국인은 인도·베트남 등에선 순매수를 했고, 한국보다 덩치가 네 배 큰 일본에서도 26조원을 매도하는 데 그쳤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원은 “30개 업종 중에서 은행·반도체·철강·통신이 외국인 포트폴리오에서 52%를 차지한다”며 “이들 업종은 시가총액 수준에 비해 외국인 보유 비중이 높아 매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바통 터치

외국인 매도는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 당장은 주가 하락을 부추겨 투자자를 울린다. 하지만 길게 보면 체력을 튼튼하게 다질 기회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2005년 이후의 강세장은 ‘외국인 순매도-국내 투자자 순매수’의 산물이었고, 외국인에 편중됐던 증시의 소유구조가 정상화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 일등공신은 펀드였다. 국내 펀드의 실탄이 풍부해지면서 외국인 매물을 거뜬히 받아냈다. 장인환 사장은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 넘게 올랐을 때 매도 공세가 있었다면 후유증이 훨씬 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연기금들이 지금 주가 수준에서 외국인으로부터 ‘블루칩’을 넘겨받게 되면 나중에 행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은 아직 개인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적고, 인구구조상 노후용 자산관리 수요가 급증하며, 기업 실적도 꾸준히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 앞날이 창창한 만큼 더 오르기 전에 매를 맞는 게 차라리 낫다는 얘기다. 외국인 지분 20% 시대가 던지는 투자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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