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17.분청사기 粉粧文祭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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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어느 한쪽을 택하라면 아무래도 한국도자기 쪽이겠지요.』 아타카컬렉션이란 명품컬렉션으로 전후(戰後) 일본 고미술계에 전설적인이름을 남겼던 아타카 에이이치(安宅英一.1901~94)는 생전에 『한국과 중국도자기 가운데 한점만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하겠는가』라는 주위 사람들의 물음에 이 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설립의 모체가 된 아타카컬렉션(本紙 5월21일字 7面참조)은 중국과 한국 도자기만을 대상으로 명품약 1천점을 모아 일본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동양 도자기의 보고(寶庫)」로 유명하다.이곳의 한국 도자기는 전 체 9백65점중 7백93점.
아타카가 한국 도자기를 처음 본 것은 그의 아버지가 1930년대 오사카의 한 개인 소장가로부터 한국 도자기 컬렉션을 일괄구입한 때였다.전쟁전 일본에서 우대받은 한국 도자기는 두 종류.하나는 다도와 관련된 다기(茶器),예컨대 일본인 들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고려다완(茶碗)류요, 또 하나는 일본민예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상용으로 쓰인 평범한 도자기들이었다.
아타카가 30대부터 한국 도자기에 매료된 것은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그는 중국처럼 인위적 위엄이 넘치지도 않으며 일본처럼 정교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하면서 한편으론 단정한 가운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점을 한국 도자기의 매력으로 꼽았다.
아타카의 컬렉션이 갖는 특징은 한국도자기들을 매우 체계적으로수집했다는 것이다.그가 모은 컬렉션에는 기법.기형.문양면에서는물론 편년적으로도 고려시대 이후 한국 도자기의 걸작들이 망라돼있다. 일본의 유명한 도자연구가인 하야시야 세조(林屋晴三)도 이 컬렉션을 가리켜 『다기를 제외하고 일본에 건너온 한국 도자기를 거의 집대성한 컬렉션』이라고 평했었다.
본의 도자기 애호가들이 조선시대 도자기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도자기가 「분청사기분장문제기(粉靑沙器粉粧文祭器)다.
아타카가 처음 보고 손에 넣으려 애를 태우다 4년 넘게 공을들인 끝에 마침내 컬렉터를 감복시켜 구했다는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제기다.
보통 이상의 크기에 당당한 기품을 갖춘 이 제기는 원래 오사카 어느 개인 소장품이었다.아타카는 여러 루트를 통해 이 도자기의 인수교섭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소장자의 완강한 거절에 부닥쳐 실패했다.그후 몇년이 지나 소장자의 아들이 대 학을 마칠 무렵 아타카는 기다렸다는듯이 그를 자기회사에 채용하고 주위에 가깝게 두었다.그리고는 음악회나 전시회에 그를 함께 데려가 저녁도 사주는등 신입사원에겐 분에 넘치는 관심을 기울였다.소장자인 부친이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마침 내 중간골동품상을 통한아타카의 인수요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물건을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분청사기는 기본적으로 청자흙과 청자유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청자의 제작기법을 이어받은도자기다.다만 조악한 청자흙,즉 불순물을 거르지 않은 흙을 사용했기 때문에 구운 다음에도 청자빛이 나타나지않고 검붉게 되자이를 가리기 위해 분바르듯 백토로 표면을 발라 구운 것이었다.
분을 바르는 방식에 따라 분청사기는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분장기법이란 담금.덤벙기법이라고도 하며 초벌구운 사기를 백토물에 덤벙 담갔다 끄집어낸 것을 말한다.
이 제기도 정제되지않은 청자흙을 사용해 굽고 그위에 덤벙기법으로 분장을 한 다음 얇은 청자유약을 발라 다시 구운 것이다.
조선시대 제기는 종묘제사용(宗廟祭祀用)은 청동기로 만들었지만일반 사대부나 서민들은 도자기로 만든 제기를 사용했다.도자기로만든 제기라 해도 기본적인 형태는 중국 은(殷).주(周)시대의청동제기를 모델로 삼고 있는데 이것도 피와 기장을 담는 제기였던 보궤(보궤)중 보를 도자기로 만든 것이다.원래 뚜껑이 있었던 것같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이 제기는 네귀퉁이와 굽바닥에 거친 톱니돌기를 둘러 형식면에선 중국 고대청동기를 따르고 있지만 조형은 완전히 조선식을 나타내고 있다.특히 굽부분은 별 장식 없이 듬직하고 단단해 오래된 성벽을 보는 듯하며 곡식을 담는 부분은 대담하 게 처리했다.형태가 거칠고, 조금 찌그러져 보이고, 일부에는 유약을 바를때 남긴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그렇지만 이런 자잘한 거친 모습은 듬직한 형태속에서 자연스럽게 용해돼 오히려 위풍당당하고위엄있게 비친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鄭良謨)관장은 『의식적인 위엄을 보인 중국제기와 달리 이 분청제기는 단순한 모습이 부각돼 잘 만든 한점의 조각처럼 보인다』며 특히 『물레로 둥글게 빚고 손으로 척 감아올려 사각으로 만든 대범함은 한국적 미의식 을 물씬하게풍긴다』고 평하고 있다.이 제기는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2층 한국 도자실에 상설전시되고 있다.
▧ 다음은 고려시대 순청자병입니다.
글 :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제공 자문위원: 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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