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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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6면

‘미스터 블랙’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다. 겨울 코트, 데님 팬츠, 반팔 라운드 티셔츠는 물론 신발에 이르기까지 춘하추동 블랙 컬러 일색인 탓에 붙은 별명이었다. 검정으로 통일한 옷이 깔끔하고 인상적이긴 하지만, 꽃놀이도 한 철! 원더걸스의 ‘텔 미’도 반복해 들으면 지겹지 않던가.

연중무휴로 블랙 컬러 퍼레이드를 펼치는 친구에게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땅값이 뛰어도 선산만큼은 팔 수 없다’는 종손의 태도로 블랙을 고수했던 친구의 항변은 이랬다. 도무지 다른 컬러 아이템을 섞어 입을 엄두가 나지 않더라는 것. 컬러가 들어간 셔츠에 눈길이 가도 바지와 신발 색깔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면 선뜻 손을 뻗을 수 없었다는 거였다.

“너무 뻔한 룩의 소유자는 어제 저녁 메뉴가 뭐였는지 맞힐 수 있을 것 같은 식상한 캐릭터죠. 뉴욕이 제2의 고향이라도 되는 듯 새까만 수트와 화이트 셔츠뿐인 남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이제, 그만!” 요즘 ‘나폴리 스타일’에 폭 빠져 있는 우리 팀 패션 에디터의 얘기다. 이쯤 되면 물정 모르는 독자 한 분이 전화를 걸지도 모르겠다. “매일 컬러가 바뀌는 타이가 있지 않느냐”고. 맞다. 검정 구두에 검정 수트 차림의 ‘비즈니스 유니폼’으로 통일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충분히 강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번들거리는 소재는 그렇다 치고 동물농장을 방불케 하는 로고, 색동저고리를 떼어 붙인 듯한 알록달록한 컬러의 타이가 검은색과 흰색 바탕 위에서 따로 노는 건 어떡해야 할까.

“원래 그런 타이는 유쾌한 야외 파티나 결혼식 같은 행사에 갈 때 재미와 위트를 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다른 곳도 아닌 회사에 가면서 그런 타이를 매거든요. 이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개그하는 격이에요.” 패션 에디터의 답변이다.

타이 하나에도 이렇게 타박이 심한데 수트의 브이존, 구두, 양말까지 컬러의 궁합을 맞추는 건 결코 쉬운 경지가 아니다. 하지만 사각거리는 핑크 옥스퍼드 셔츠, 점박이 포켓 스퀘어, 잘 익은 스콘처럼 반질대는 브라운 슈즈, 도톰한 멀티 스트라이프 양말이 안겨주는 잔재미를 블랙 수트로 억누르고 사는 건 억울한 일이다.

쭈뼛거릴 필요 없다. 지금 당장 파스텔 톤 셔츠에서 시작해 구두·수트·양말로 색의 변화를 더해 가면서 주변 반응을 즐겨 보라. 소희가 빠진 원더걸스를 상상할 수 없듯 컬러가 빠진 걸 상상할 수 없는, 바야흐로 봄 아닌가. 사진 루엘


글쓴이 문일완씨는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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