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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표 레스토랑’ 주방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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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6면

봄 풍경이 참 예쁘다. 아마도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든 시작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연애도 결혼도.

신혼 초, 남편이 요리를 해준 적이 있다. 휴일 아침 갑자기 갈비찜을 해먹자며 요리책을 뒤지더니 마트로 달려갔다. 총각 시절에는 제 손으로 라면도 안 끓여 먹었다는 남편은 경험 부족을 요리책 레시피에 충실한 것으로 보충했다.

‘정종 몇 큰술’을 위해 잘 먹지도 않는 정종과 비싼 배와 대추·밤도 몇 알 사고, 각종 야채와 양념도 꼼꼼히 준비했다. 남편의 ‘좌충우돌 무한도전 갈비찜’은 그날 저녁 늦게야 완성됐는데, 결론을 얘기하자면 맛있었다. “거봐, 내가 너보다 맛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니까.” 남편의 절대미각에는 신빙성이 없지만(사실 남편은 못 먹는 음식이 많다) 앞치마를 두르고 수저로 간을 맞출 때마다 의기양양해하던 모습은, 신혼 초의 알콩달콩 예쁜 풍경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 스스로는 잘 하지도 않는 요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건, 봄이 다가오면서 파릇파릇한 먹거리가 눈에 띄어서다. 뭔가 해 먹으면 좋겠는데…. 결국 실천에 옮기는 무모한 용기는 포기하고, 제철 음식 기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 저녁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뒤적였다. 그때 눈에 띈 문구.

“거친 물살을 헤치고 기어이 태생지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우리는 귀소본능을 가지고 최초의 맛을 찾아 헤맨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엄마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는데 문득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는 ‘세상의 수퍼우먼의 숫자는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아닌가.

지금도 우리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애쓰지만 여유가 많지 않다.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우리보다 그만큼 덜 경험하고 있다. 그 빈 숫자를 채워줄 사람은 당연히 아빠인, 당신이다.

잘 아는 사진가는 한 달에 한두 번은 어김없이 아이들과 시장을 보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 시간을 갖는다. 워낙에도 맛과 멋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의 요리 리스트와 조리 수준은 웬만한 요리사 뺨친다.

이제 가끔은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요리를 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며 사진가의 자랑이 대단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개장했으니 ‘아빠표 레스토랑’은 햇수로도 십 수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 시간 동안 두 아이의 기억 속에 쌓인 게 맛에 대한 기억뿐일까.

어느 날 섬광처럼 번뜩 일상으로 쳐들어온 사건은 분명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한없이 가벼운 크리넥스 티슈도 한 장 한 장 쌓이면 놀랄 만한 ‘무게’를 가지듯, 일상에 뿌려지는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거대한 추억의 뜰을 이루기도 한다. 아마도 후자의 풍경이 더 예쁘고 행복할 것이다. 꽃피는 춘삼월, ‘요리하는 아빠·남편 되기’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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