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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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옥이 「처녀」임을 길례는 의심치 않는다.그것은 어머니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처녀라면 처녀인대로,아니면 아닌대로 조바심이 난다.
첫날밤은 의식(意識)의 시공(時空)이다.
의식에 합당한 절차와 분위기가 필요한 것이다.
영혼을 밑뿌리서부터 흔드는 경건함과 애절함.
가톨릭교 신자도 아닌 길례가 성당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의 경건한 분위기와 성가(聖歌)의 애절함 때문이었다.
첫날밤은 그런 맑은 눈물겨움과 함께 해야 한다.
연옥의 경우는 어떨까.뭔가 덜 일러 준 것같은 모자람이 길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리 와 앉으시게나.』 사돈댁 노마님이 길례를 불렀다.옛 이웃집 한약방 아주머니,아니 이젠 연옥의 시고모다.
『그전처럼 말씀을 놓으세요.그게 편한데요.』 길례는 안방으로들어서며 말했다.
사돈 내외와 남편이 노마님 옆에 대령해 있다.노마님 무릎은 종손 아기 차지다.
『음전키도 해라.』 노마님이 동해의 볼기짝을 두드리며 칭찬한다. 『…긴긴 세월 애 키우자면 고생 많겠소.』 은근히 길례를두둔하는 소리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천재(天災) 속에서 종손이 살아 남았으니 천행이 아닙니까.』 순순히 고개 숙이는 남편을 사돈 어른 박사장이 위로한다.
사돈 마님은 일본서 태어나 자란 우리나라 아이가 마냥 신기한모양이다.
『참 영리해 보여요.이 도련님 모시고 자주 놀러 오십시오.아이는 아이를 맞아들인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 새아기도 빨리 아이를 갖게요….』 벌써 손자볼 생각을 하고 있다.동해가 연옥의회임(懷妊)을 위한 「마중 아이」이길 바라는 눈치다.
연옥이 회임하면 집안은 온통 아이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연옥과 임해를 연년생으로 낳아 기른 그때처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해는 길례에게 안겨 잠들었다.
며칠 사이에 고약한 버릇이 생긴 것같다.길례가 안아주어야만 비로소 잠드는 것이다.
『내내 그런 식으로 안고 재울 거요? 혼자 자도록 해야지.』남편이 약간 볼멘소리를 냈다.
『낯선 땅에 와서 아이도 불안한 것같아요.정서가 안정되면 괜찮아지겠지요.』 길례는 어느새 아이 편이다.
밤늦게 연옥이 전화를 걸어 왔다.
호텔에 잘 도착했다면서 동생도 옆에 있다고 한다.
『임해가? 왜?』 길례는 놀라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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