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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지휘의 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휘가 예술인가.연주자들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어대는 지휘자를볼 때마다 품음직한 의문이다.연주자들을 노려보며 다그치는 「폭군」형이 있는가 하면,혼자서 명상에 잠긴듯 손만 흔드는 이도 있다.프리츠 라이너는 근엄한 부동자세에 그 손놀 림마저 인색했다.지휘자는 음악의 부호와 심벌을 「의미있는 소리」로 옮겨놓는「통역자」라고 한다.통역이나 번역은 잘못되면 「반역」(反譯).
그러나 예술의 세계에선 「제2의 창작」으로 통한다.지휘를 「창조적 재현」으로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세기 지휘계의 쌍벽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베토벤 연주의 대가였다.토스카니니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11번이나 지휘했다.푸르트벵글러가 우연히 토스카니니의 리허설을 엿들은 적이 있다.첫 악장이 막 시작 되자 『저런,시작부터 망쳐놓는구먼』하고 혀를 찼다.토스카니니는 악보에 충실한 정확한 연주로 음악 해석의 객관화를 추구했다.『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지휘자에 따라 나폴레옹도 될 수 있고,히틀러나 무솔리니도 될 수 있다.그러나 나에게는 그저 「알레그로 콘 브리오」(힘있고 빠르게)일 뿐』이란 명언을 그는 남겼다. 반대로 푸르트벵글러는 신축적이고 자의적인 곡 해석의 대가(大家)였다.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시작은 악보를 일부 생략해 「무한의 심연(深淵)으로부터 소리가 솟아나오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설적인 명지휘자:지휘의 예술』이란 다큐멘터리가 24일 밤미국 공영방송의 전파를 탔다.1913년 아르투르 니키시에서부터70년대 레너드 번스타인에 이르기까지 대가 16명의 실황과 진귀한 리허설 장면등이 흑백필름에 담겼다.BBC- IMG필름이 수집한 필름에다 생존 연주자들의 코멘트를 곁들인 90분짜리 특집이다.「예술이냐,수수께끼냐」「독재자냐,괴짜냐,천재냐」는 의문을 시종 바닥에 깔고 있지만 청중과 음악을 연결시키는데 이들은하나같이 비범한 역량을 보였다.
이 필름 방영에 앞서 우리의 사라 장(장영주)양이 링컨센터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가진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협연이 실황중계됐다.14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되고 여유자적한 모습이도리어 마음에 걸렸다.천재는 기존의 경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아니고 새로운 경지를 부단(不斷)히 열어가는 데 있음은 지휘자와 연주자가 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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