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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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과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의 목제미륵보살반가사유상.재질과 크기만 좀 다를 뿐 생김새는 영락없는 쌍둥이다.둘다 7세기초 작품이다.
서울 보살상의 재질은 금동,키는 93.5㎝.경주에서 출토됐다고도 하고 충청도서 발견됐다고도 한다.국보 83호로 지정돼 있다. 적송(赤松)으로 깎은 교토의 보살상 키는 84.2㎝.일본국보 제1호다.고류지측에 의하면 백제에서 전해졌다 하나 『일본서기』엔 623년 신라에서 전해진 것을 고류지에 옮겼다고 기술되어 있다.어떻든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불상이 다.당시 일본에선 녹나무로 불상을 깎았다 한다.
왼쪽 무릎 위에 오른 발을 얹고 약간 고개숙인 채 오른쪽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있는 모습.입가에 띄운 오묘한 미소.
그지없이 우아하다.
『맑고 온유하고 평화롭고….인간이 지을 수 있는 최고의 표정같아.』 고류지 영보전(靈寶殿) 중앙에 안치된 미륵보살상을 보고 남편이 탄성을 올렸다.
『야스퍼스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글이 고류지 해설 책자에 실려 있었다.
『이 보살상엔 완성된 인간 실존의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다.지상의 모든 속박을 초월하여 다다른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淸淨)하고 가장 원만하며 가장 영원한 모습.내 철학자의 생애를 통틀어 이처럼 평화로운 인간 실존의 참모습을 따로 본 적이 없다….』 서울의 보살상을 봐도 야스퍼스는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보살상을 만든 것일까.길례는 보살상을 만든 손에 무한한 부러움을 느꼈다.
-아니지.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야.영혼으로 빚었을 신기다.
그 영혼에 사로잡힌다.
그 영혼을 담았을 육신에 끌린다.
여자란 그런 것이다.
한 영혼에 사로잡히면 그 영혼을 담고 있는 육신에 강한 성적(性的)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여자의 에로티시즘은 영혼으로 짜낸 섹스의 날개옷이다.
미륵보살상을 안치한 고류지는 622년에 세워진 절이지만 교토가 헤이안쿄(平安京)란 이름의 수도로 삼아지기는 8세기말이다.
그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수도였다.
화려한 역사의 무늬로 아로새겨진 이 고도(古都)엔 옛절도 많고 층탑도 많다.모두 한국계 도래인들이 세운 것이다.층탑을 휘돌아 감으며 장미빛 저녁놀이 진하게 물들어 있다.
거리에 빨간 초롱불이 켜졌다.고도의 밤은 관능미(官能美)로 채색되어 간다.
예약한 여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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