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22년 만에 부활한 ‘대주’ … 하락장의 주식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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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주식 투자를 해 온 회사원 김모(30)씨는 ‘주식 고수’로 불린다. 1월 중순 그는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지난해 미래에셋그룹이 집중적으로 사들인 조선주를 외국인이 마구 팔고 있었다.

김씨는 조선주가 급락하면 미래에셋증권 주가도 떨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1월 21일부터 부활한 ‘대주(貸株)제도’를 떠올렸다. 대주란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일정시간 뒤에 다시 주식으로 되갚는 제도다. 어떤 종목의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활용하는 수단이다. 돈을 빌려 주식을 샀다가 주가가 오른 뒤 팔아 돈을 갚고 차액을 챙기는 신용거래와 정반대다.

1월 23일 미래에셋증권 주가가 15만원대로 오르자 김씨는 100주를 빌려 팔았다. 호주계 맥쿼리증권이 조선주 목표 주가를 최고 60%(61만원→23만원)까지 낮춘 보고서를 낸 1월 30일. 조선주가 급락하면서 미래에셋증권 주가도 하한가까지 추락하자 그는 주당 11만원에 주식을 사서 되갚았다. 열흘도 안 돼 그가 올린 차액은 주당 4만원씩 400만원이었다.

그동안에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주식을 빌려 팔 수 있었다. 대차 거래가 그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대주는 1986년 이후 사실상 금지됐다. 증시 과열을 우려한 정부가 이를 막았기 때문이다. 대주가 다시 살아난 건 주가 급등 때문이었다. 지난해 주가가 뛰며 초단기 외상거래가 급증하자 정부가 이를 금지했다. 대신 신용융자가 늘면서 대주 제한이 풀렸다. 증권금융 관계자는 “대주가 허용되면서 증시 침체기에도 새로운 투자 수단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무위험 차익거래도 가능=대주가 허용되면서 아무 위험 없이 수익을 올리는 거래도 가능해졌다. 지난해 10월 30일 전환사채(CB)를 발행한 미래에셋증권 주식이 예다. 이 CB의 주식 전환 가격은 주당 13만원이었다. 따라서 미래에셋증권 주가가 13만원이 넘을 때 대주를 활용하면 이후 주가가 떨어지든 오르든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주가가 15만원일 때 대주를 했는데 주가가 10만원이 되면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땐 주당 3만원씩 손해지만 대주를 통해 주당 5만원씩 벌어 주당 2만원의 차익을 얻는다. 반대로 주가가 20만원이 되면 대주에선 주당 5만원씩 손해를 봐도 CB를 전환해 주당 7만원씩 이익을 내 역시 2만원의 차익이 생긴다. 아무 위험 부담 없이 주당 2만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한국과 싱가포르 증시에 동시 상장된 STX팬오션 주식을 이용한 국가 간 차익 거래도 나왔다. 한국 주가가 비쌀 때 대주를 활용해 주식을 판 뒤 싱가포르 주식으로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증권금융 박전규 시장지원팀장은 “대주 거래가 가장 활발한 종목이 미래에셋증권과 STX팬오션인 것도 차익 거래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활용하나=신용융자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계좌에 40만원이 있으면 100만원어치 주식을 60일 동안 빌릴 수 있다. 빌린 주식은 당일 무조건 팔아야 한다. 증권사별 대주 한도는 1억~10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만약 계좌에 있는 돈으로 주식을 되살 수 없을 만큼 주가가 오르면 증거금을 추가로 채워 넣어야 한다. 지금은 굿모닝신한·현대·키움증권 세 곳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나 상반기 중 13개 증권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대주도 신용융자와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며 “자칫하면 ‘깡통계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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