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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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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우선 구인 광고부터 하자. 찾아야 할 남자가 있다. 그의 인적사항은 이렇다. 이름: 멋진 한국 청년, 나이: 20대 후반 이상, 외모: 얼짱·몸짱 우대(그보다 더 반가운 건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 마음가짐: 언제나 청춘. 주변에 이런 남자 있으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그러면 당장 그를 위해 소개팅을 주선하겠다. 하루에 세 번도 시켜줄 수 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를 입에 달고 살며 한숨 쉬는 여자들, 내 주위에 너무 많다. 도대체 한국의 ‘멋진 청년’은 다 어디로 사라져 그녀들의 애를 태우는 걸까?

사실, 나는 그들이 간 곳을 안다. 그들은 좀비처럼 걸어 ‘조로의 늪’으로 갔다. 그곳은 한번 빠지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곳. 청춘의 꿈과 패기, 그리고 자신에 대한 관심은 그 늪에서 ‘현실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소멸된다. 그들의 등을 떠밀어 조로의 늪으로 빠트린 건 ‘입신양명’의 무게감과 ‘남을 밟아야 내가 사는’ 후기 자본주의 생태계와 ‘남들처럼 살면 편하다’는 현실적인 처세 등이다. ‘오빠’는 이 늪에 빠져 순식간에 ‘아저씨’로 변한다. 그 늪을 피한 몇몇 오빠가 ‘멋진 청년’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찾기 힘들다.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남자의 조로가 썩 나쁘지는 않다. 힘들게 입시 관문을 통과한 한국 청년은 새내기 딱지를 떼자마자 냉큼 군대 다녀와 이젠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영어에 목을 맨다. 2호선 신도림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타듯 치열하게 취업문도 뚫은 청년은 이제 ‘회사 인간’이 되어 본격적인 아저씨로 변신한다. 1단계로 ‘배둘레햄’이 끼고, 2단계로 머리가 벗겨진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잊으면 3단 변신이 완성된다. 오늘날 우리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를 넘볼 수 있게 된 건 조로한 한국 남자의 공이 크다. 하지만 청춘을 거세당한, 어쩌면 반쯤은 스스로 거세한 당신 자신은 과연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축하한다. 철없는 척하는 나를 비웃어 다오. 그렇지 않다면 청춘이라는 잃어버린 시공간과 경험을 다시 생각해 봐도 좋다.

얼마 전 어느 광고 대행사의 부사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5학년 1반, 그러니까 쉰 한 살이다. 하지만 결코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얼굴과 밀리터리 룩을 기본으로 한 옷차림새뿐만이라면 말도 안 한다. 그는 아직도 회현동 지하상가를 뒤지면서 닐 영의 LP를 구하고,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들고, 다시 기타를 사 핑거 스타일 주법을 익힌다. ‘철들지 말자’는 모토를 가지고 사는 그 ‘청년’은 ‘May you stay forever young’이라는 밥 딜런의 노래 가사를 알려줬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조건 예찬하는 건 아니다. 대학생 신분으로 장가갔다니, 그 또한 조로한 어느 한국 남자 못잖게 열심히 살았을 거다. 하지만 자기를 잃지 않고 산 덕분에 지금 그의 삶은 적당히 풍요롭고, 많이 풍부하다. 그건 청년으로 오래 산 덕분에 받은 선물이다. 현실을 좇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정당하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 그건 공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너무 빨리 늙진 않았으면 좋겠다. 조로는 조루만큼 불행하다.

글 송원석 기자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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