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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바꿀 돈으로 中企 디자인 밀어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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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28면

“서로 다른 문화가 부닥쳐 스파크를 일으켜야 한다. 서울 사람은 런던에 가서, 런던 사람은 두바이에 가서 ‘번쩍’ 떠올린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가 많은 법이다.”
영국의 대표적 디자인회사 ‘탠저린’을 이끌고 있는 이돈태(40·사진) 사장은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위한 첫째 조건을 문화 충돌이라고 강조한다. 이 사장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국 브리티시항공의 비즈니스석 디자인이 동서양 문화가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소개했다.

英 디자인업체 탠저린의 이돈태 사장

2000년 탠저린은 브리티시항공으로부터 비즈니스 좌석을 인간 친화적 디자인으로 바꿔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입사 3년차로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이 사장은 S자 형태의 좌석을 마주 보게 배치해 승객이 발을 쭉 뻗고 누울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사장은 이 아이디어의 원천을 김우중 전 대우 회장한테 얻었다고 했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김 전 회장이 ‘비행기를 타면 의자보다 복도에 누워 자고 싶다’고 한 얘기를 떠올린 것. 하지만 비행기에 완전히 누울 수 있는 의자를 설치하면 좌석 수가 줄어 항공사 수익에 차질이 생기는 게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영국 마차를 떠올려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좌석 수는 유지하면서도 고객의 ‘편안한 잠’ 욕구를 충족시킨 이 프로젝트의 성공 덕분에 브리티시항공은 비즈니스석 탑승 수요 증가로 연간 수천억원대의 매출 증대 효과를 거뒀다. 이 사장에게도 영국 최고 권위의 디자인상인 IDEA 그랑프리를 안겨줬다.

삼성물산 아파트에 설치되는 전기 콘센트·스위치와 비디오폰. 이 사장은 색깔과 모양을 통일해 안정감을 갖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도 항상 성공작만 내놓았던 것은 아니다. 실패한 디자인도 여럿이다. 이 사장은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되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신입사원 시절 그가 한 첫 과제가 한 예다. 선물용으로 줄 웨지우드 도자기의 디자인을 맡은 그는 과감한 소재와 색상을 채택해 고객사에선 ‘신선하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정작 소비자에겐 외면당해야 했다. 웨지우드의 250년 전통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디자인이 생소했던 것이다. 이 사장은 “좋은 디자인은 시장보다 반(半) 발자국 앞서가면서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배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 사장이 역점을 두는 것은 아파트에 디자인 개념을 불어넣는 일이다. 2006년 6월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영입된 그는 매달 일주일은 이 회사에서 일한다. 그동안 작업한 내용을 확인해 보니 거창한 게 아니다. 아파트에 설치되는 각종 스위치와 콘센트, 비디오폰 등을 비슷한 톤의 색상과 모양으로 조화시킨 게 대표적인 실적이란다.

 “전기부품 회사들은 중소기업이다 보니 디자인 능력이 떨어져 그냥 ‘찍어내기’에 급급한 형편이지요. 이렇게 생산된 각종 부품들이 집안에서 ‘와글거리고’ 있어 안정감을 해칩니다. 중소기업들에 디자인 콘셉트를 제공함으로써 대기업과의 디자인 상생(相生)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겁니다.”

 이 사장은 이 대목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디자인 정책이 보여주기에 치우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벤치나 가로등 디자인을 바꾼다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지 않는다”며 “그러나 수출 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하면 외국인이 저절로 ‘디자인 코리아’를 경험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삼성이나 LG·현대자동차의 디자인은 이제 세계적 수준에 와 있지만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른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디자인 정책만큼은 영국을 벤치마킹하라고 조언한다. 최근 탠저린이 중국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 정부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주중 영국 대사관 직원이 중국 기업을 물색해주고 나중에 수금까지 도와주는 등 ‘현지 에이전시’ 역할을 해줬다”며 “영국 업체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것은 정부가 이렇게 꼼꼼하게 측면 지원을 해주는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디자인 산업은 21세기 들어 세계 일류로 부활했다고 평가받는다. 디자인 관련 창업이 활발해 현재 4000여 개 회사가 경쟁 중이다. 1989년 설립된 탠저린은 현재 영국 내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으며, 유럽 빅5 안에 든다. 이 사장은 “탠저린은 재무·마케팅·지원 기능 등은 모두 아웃소싱하고 디자이너 25명만 근무한다”며 “정확한 매출을 밝힐 수 없지만 디자이너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 애플의 MP3플레이어 ‘아이팟’과 누드형 컴퓨터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도 이 회사 출신이란다. 삼성전자·LG전자·KT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비롯해 일본 후지쓰, 독일 티모바일 등이 주 고객이다.

 이 사장이 탠저린과 인연을 맺은 것은 98년 봄이다. 96년 결혼한 뒤 부인과 함께 영국 유학 길에 올라 당시 왕립미술대학원(RCA)에 다니느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는 인턴 신분으로 주급 170파운드(약 32만원)를 받은 지 3개월 만에 정식사원이 됐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 900파운드(약 173만원)를 자문료로 받는 공동대표가 됐다. 동양에서 온 ‘검은 머리’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성공한 비결에 대해 그는 “성실은 만국 공통어”라고 더 짧게 대답했다.

 이 사장이 본격적으로 기업 경영에 뛰어든 것은 2005년 2월. 주요 고객이던 항공업계가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탠저린도 된서리를 맞았다. 이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당시 부사장이던 그는 “주주로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마틴 다비셔 사장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런던 집을 담보로 탠저린 지분 40%를 사들인 것. 그는 “글로벌 디자인 회사를 새로 만들어 키우는 것보다 탠저린을 인수하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다”며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스스로 말하기를 “강원도 사투리가 심해 서울 올라와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수 없었던 촌놈 중의 촌놈”이었던 이 사장은 10년 만에 ‘글로벌 유목민’이 됐다. 그는 한 달에 1주일은 한국 사업을 챙기고 부인과 세 살배기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1주일은 탠저린 본사가 있는 런던에 머문다. 나머지 2주일은 “돌아다닌다”고 했다.

지난주미 보스턴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 머무르다 한국에 왔지만 다음주엔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간다. 연중 평균 15개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 경영자인 다비셔 사장과는 하루 4~5통씩 e-메일과 전화로 연락한다. 그는 “회계장부가 깨끗하고 서로 신뢰하고 있는데 굳이 본사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디자인 경영이 화두인 시대를 맞아 CEO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디자인 경영을 하려면 3년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관된 디자인 철학과 전략·전술을 다듬는 데 3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3명 이상의 전문가를 두고 다각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돈이 많이 들겠다고 대꾸하자 그는 “돈보다 관심을 투자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후배 디자이너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한마디로 “짐 싸서 나가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디자인 인력이 100만 명에 이르러 인구 비율로 보면 미국의 여섯 배”라며 “미국·유럽 등 디자인 주류 시장을 뚫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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