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自心정치"의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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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이 경기도지사에 훌륭한 인물을 앉히기 위해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노력한 것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욕을 먹어가며,위험부담을 무릅써가며 돈봉투를 만들고 주먹질을 하고 대의원들을 집단투숙시켜 고스톱으로 무료를 달래게 하면서 경기도 지사후보에 최선의 인물을 내보내자고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경기도민들로서는뭐라고 감사의 뜻을 표현해야 할까.아마도 한쪽에선 장경우(張慶宇)의원을 최선의 후보로 생각했기에 그렇게 열심히 무리를 했을테고,다른 쪽은 안동선(安東善)씨만한 지사감이 없다고 봤기에 그토록 치열하게 맞섰던게 아닌가.
그러나 그런 눈물겨운 노력이 화근이 되어 양쪽이 그토록 훌륭한 지사감으로 확신했던 張.安씨는 지금 정치적으로 초주검이 되고말았다.자칫 잘못되면 지사는 커녕 출마도 못해보고 사법처리의위험부담까지 지게 됐다.
여기서 한가지 기이한 것은 싸움의 주역은 張.安씨인데 이번 일로 신문과 방송에서 이름을 더 떨치는 사람은 이기택(李基澤)총재와 권노갑(權魯甲)부총재라는 점이다.언론에서는 張.安씨의 싸움을 이기택系와 동교동系간의 대리전(代理戰)이라 고 불렀고 李총재와 동교동系인 權부총재간의 대립을 초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張.安씨는 이른바「金心」과「李心」의 대결에서 나온 불행한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자기 마음이 아니라 남의 마음을 따라가다 쓰라린 좌절을 겪은 사례다.
민자당의 이명박(李明博)의원은 대통령의 종용도 뿌리치고 경선을 고집해 마침내 뜻을 관철했다.
비록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李의원의 정치적 위상은 올라갔고 그의 고집은 자신과 黨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결과로 이어졌다.그가 金心을 따라만 갔던들 그 역시 경선이 있기 전의 한 평범한 풀죽은 초선의원으로 별 볼일이 없었을 것이다 .
민주당의 허경만(許京萬)의원 역시 金心을 따라만 가지 않고 용기있게 경선에 나서 승리한 케이스다.그는 이기고 나서 너무나죄송해서『선생님,이겨서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했지만 이미 경선에서 이긴 그의 승리는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것이 었다.
여기서 우리는 남의 마음을 따라가다가 좌절한 케이스와 자기결심으로 밀고나가 뭔가 이뤄낸 케이스의 좋은 대비(對比)를 보게된다. 그리고 이 대비가 시사하는 우리정치의 중요한 변화의 조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른바「金心의 시대」에서 이제 자심(自心)의 정치가 막 시작되려는게 아닌가.경선이라는 새로운 정치환경을 맞아 철벽같던 金心의 권위에도 작은 틈이 생기고 있는건 아닐까.누구나 이런 점을 주시하게 되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선거정국에 접어들면서 전에 못보던 현상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과거 같으면 여당의원.고위공직자.군장성등이 선거철을 맞아 여권(與圈)에서 야권(野圈)으로 바로 가는 일은극히 드물었다.
정권의 힘이 그만큼 강했고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에 보면 경선을 않는다고 현역의원이 탈당해 바로 야당에 가버렸고,한은총재를 중도하차한 조순(趙淳)씨나 金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황산성(黃山城)씨도 야권을 선택했다.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서울구청장들은 여당보다 오히려 야당쪽에 더 많이 줄을 섰다.민주화 탓도 있겠지만 정권의 구심력이 그만큼 약해졌고 그만큼 정권을 덜 겁내는 것이다.
許의원의 예에서 보듯 야권의 구심력도 전과는 다르다.金心에 대한 이기택총재의 잦은 도전이나 경기지사후보처럼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민주당의 사정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곧바로 천하의 가을을 알리는「오동잎」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른지 모른다.하지만 6월선거가 끝나고 내년 총선의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현상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가능성이크다. 이제 경선이 대세가 된 이상 다시 경선 아닌 임명제 공천으로 되돌아 가긴 힘들 것이다.
경선이 있는 이상 임명권자의 문앞에 줄서던 사람들이 표를 가진 대의원과 국민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막기 힘들 것이다.이명박방식이 괜찮더라,허경만방식이 성공하더라는 제2,제3의 李.許현상은 자연발생적일 수밖에 없다.
남의 마음에 끌려만 가던 사람들이 경선의 시대를 맞아 마침내「自心의 정치」를 모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런 현상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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