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민심 탐방] 2. 경제부터 챙기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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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실업률이 지난해 10월부터 줄곧 높아지는 가운데 채용 박람회마다 구직자가 몰리고 있다. 정치권이 민생을 제대로 챙겨 이런 행렬이 줄어들 날은 과연 언제인가. [중앙포토]

2월 25일 졸업식 날 경북대 교정. 대구 시내 자가용이 거의 다 몰린 듯 마치 주차장 같았다. 졸업생들은 화창한 날씨에 축하객들과 사진을 찍느라 바빴는데, 취업이 확정된 학생과 안 된 학생의 명암이 교차했다. 지난해 말 SK㈜에 합격해 연수 중인 서인호(27.화학공학과 졸업)군을 만났다.

"우리 과에서 40명이 졸업하는 줄 알았는데 식장에는 20명도 채 안 나왔어요. 기업들이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를 원하니까 자진해서 한 학기 더 다니는 친구들이 많답니다. 취업하지 못한 친구들은 선거에는 관심도 없어요."

*** 취업난에 선거 관심 덜해

徐군은 SK㈜ 입사 동기생 29명 중 자신과 같은 지방대 출신은 5명뿐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이라고 전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지방대 출신은 더욱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구는 지난해 4분기 청년실업률이 11.1%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올 1월에 전국 평균 청년실업률은 8.8%로 뛰었다. 이런 판이니 졸업예정자는 물론 대학 2, 3학년생들도 벌써부터 취업을 걱정하고, 정치는 도움이 안 된다며 외면한다.

"복학생들은 정부 정책이 바뀔 때마다 엄청 예민해져요. 직장 구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정치판은 걸핏하면 비리가 터지고 서로 싸우니…. 정말 쳐다보기도 싫습니다."(최재웅.공주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 휴학)

청년실업, 신용불량자 양산, 카드사 부실 문제에 대해선 너나없이 열변을 토한다.

"카드사들이 그렇게 아무에게나 카드를 발급하더니만 이제 와서 신용불량자로 낙인찍어 취직도 못하게 하면 어떡합니까. 취직을 할 수 있어야 벌어서 갚을 게 아닙니까."(김종흥.49.안동 하회마을 굿탈놀이 이수자)

젊은이들만 한숨 쉬는 게 아니다. 시장 상인과 음식점 주인, 택시기사 등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업종에서 뛰는 사람들의 탄식은 더 크다.

"오전 7시에 나와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일하는데 10만원 벌면 재수 좋은 날이고마. 한달에 20일 일한 뒤 이것저것 떼면 130만원밖에 안 돼 죽을 맛이라고. 내 일하기 싫어 그런 것도 아니고 괜히 부아가 치밀어."(김성률.55.울산 택시기사)

"왜 이 모양이여.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지 사람들이 오질 않으니…. 저기 저곳은 매상이 절반으로 줄어 아예 가게를 내놓았다고."(고경영.울산시 달동 음식점 주인)

*** 정치.정책 싸잡아 비난

"대게 철인 데도 매상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었어요. 주말에도 몇 자리 안 차서 썰렁합니다. 서울 등 대처 외지 손님들이 그 전보다 덜 찾아오거든요. 돈이 이렇게 안 돌아서 어떡헌데요. 있는 사람들이 써줘야 하는디…."(차은향.강원도 울진군 죽변항 음식점 주인)

특히 지방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와 자영업자들은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 정부 정책까지 싸잡아 비판한다. 총선 후보들도 지역을 돌면서 "너무 힘들다. 경제부터 살려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전한다. 민생이 이번 총선의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내 30년 기업하면서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어요. 지금은 '인적 불황'입니다. 광주시 충장로에 가 보면 젊은이가 그득한 데도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못 구해 난리고…. 기업들이 불법체류자가 아닌 외국인 근로자를 당당하게 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강대권.광주 하남공단 ㈜장호 회장)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보셨지요. 영화처럼 지금 중국인들이 인해전술로 넘어오고 있다고요. 이미 우리 밥상의 70%가 중국산 아닙니까. 그런데도 정치권은 너무 태평입니다. 경제 마인드도 너무 차이가 나요. 중국 공무원들은 외자유치를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끌어들입니다.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는 눈에 불 보듯 뻔합니다."(류병현.경남 창원 동구기업 대표)

*** "중소 도시도 빈집 늘어"

"전라남도 인구가 곧 200만명이 무너집니다. 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예요. 수도권 규제를 풀면 죄다 그리 몰려갈 겁니다. 지방으로 공장을 옮기면 세제 혜택을 준다고요? 옮기면 뭐합니까. 일할 사람이 없는데…. 지금 농촌만 빈집이 있는 게 아닙니다. 중소도시에서도 빈집이 늘고 있다니까요."(안홍순.광주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중국 산둥(山東)반도 영성시 공무원이 두번이나 공장을 찾아와 투자를 권했어요. 사업 협의차 가니까 영성시 공무원과 합작회사 양쪽에서 공항에 나오더라고요. 우리 공무원들은 어디 그렇게 합니까."(김웅준.경남 거제 녹봉조선 대표)

어디를 가나 어렵다지만 지방에서 겪는 경제적 고통은 더욱 크다. 조류독감과 광우병 파동도 모자랐는지 폭설 피해까지 겹쳤다. 1월 중 서울의 어음부도율이 0.04%인 데 비해 지방은 그 세배에 가까운 0.11%다.

"글쎄 6200원 하던 요소비료 한 부대가 7000원이 넘게 올랐어. 하우스용 비닐값도 뛰었고…. 정부에선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해 유기농과 친환경농업을 하라는디 일본 따라가려면 맨발로 뛰어도 안 되여."(김선규.54.충북 음성군 대소면 미곡1리 이장)

"먹고살기 힘드니까 투표하지 않겠다는 주부들이 많아요."(이윤숙.전남 순천 화가)

"장관들을 총선으로 내몰았는디 새 장관이 일 배우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서민들은 더 고초를 겪을 거라고."(강길수.46.전북 부안 보금당 주인)

"외환위기 때는 그래도 저축한 거라도 있어서 썼지. 지금은 아예 돈이 말랐시오."(이창순.55.대구시 수성시장 상인)

이만훈 사회전문기자, 양재찬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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