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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안전문화와 實名공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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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기어이 잘못되고 만다」는,약간은해학적인 내용이「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다.만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역설적 교훈을 지닌 말이라 본다.그런데 그동안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엉뚱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사고들을접하면서 이「머피의 법칙」이 어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도 잘 지켜지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을 하게 된다.그야말로「우째 이런 일이…」벌어지는가.
일전에 어느 교수가 고질적인 교통질서 해소방안의 하나로 모든차량의 번호판 대신 운전자의 이름을 부착하자는,어찌 보면 엉뚱한 제안을 한 기억이 난다.사실은 여기에 많은 교훈이 숨어 있다.결국 인간은 어떠한 형태로든 스스로의 행동에 는 그 행동에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평범하면서도 자칫 간과하기 쉬운 기본논리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유교전통을 생활화한 체면.가문중시의 사회다.그러나 인간은「공식적이고 엄숙」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그래서인지 우리사회에서는 공석(公席)과 사석(私席)간 행동양식에 큰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공석에서는 전통사회의 체면과 명분이 중요하게 작용해 엄숙하고 공식적인 반면 사석에서는 이를 한껏 풀어헤치는 것이다.본인의 실명이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행동차이도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못한 게 없어도 자기이름 밝히기를 유난히 꺼려한다.전화통화시 상대방이 이름을 물으면 불쾌해한다.일전에 택시안에서 다른 손님의 지갑을 발견하고 보다 확실하게 주인을 찾아주려고 필자의 이름을 밝힌 후 운전기사의 이름을 물어보았다가 험한 소리까지 들었다.좀 과장된 예인지 모르지만 시민 모두의 가슴에 자기명찰을 달아보라.어디 함부로 무단행단.길거리 침뱉기를 할 것인가.이러한 사소한 거리질서에서만이 아니다.대형안전사고의 경우도 정도차 이는 있으나 유사할 것이다.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구조아래서는 이러한 실명공개의 효과는 더욱 크다.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한 대안이 되도록 사회규범을 설정할 수 있다는 논지를 지닌 의사결정론(意思決定論)의「자기구현의 원리(Principle of Selfrevelation)」가 가장 적용되기 쉬운 사회가 우리사회다.실명공개화는 선진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도 가능하나,이는 사회문화 배경의 차이에서 해석돼야 한다.
앞으로 대형 안전사고 가능성이 상존하는 시설의 건설공사,관리유지에는 문서상의 실명화가 아닌 이름을 공시하는 실명공개화를 검토하기 바란다.설계.시공.준공.관리운영에 걸쳐 형식적이고 총론적인 실명적용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실명제 도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예컨대 대형공사시에도 건설회사 이름만 밝히지 말고 작업현장마다 담당업무별로 담당자의 이름을 제시하고,준공된 건물에도 관여한 담당자들의 실명을 새겨넣어야 한다.잘못될 경우에 대비한 게임룰이기도 하지만 잘된 작 품에 대한 작가명의 역할도 하리라.
사고발생후 사후적 명단공개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없고 오히려 인권침해의 요인이 강하다.이보다도 실명공개화를 사전적으로 공시하는 게임룰이 필요하다.이러한 실명공개화는 시대에걸맞지 않으냐는 부정적 시각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이중적 사회문화구조가 해소되기 전에는 당위론적 호소만으로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실명공개화라는 사고의 틀은 문민시대.지방자치화시대.자본주의시대에 닥쳐올 제반 사회문제에 대해「어떻게」실마리를 풀어가야 하는 가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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